번역가의 초등학교 친구 인터뷰 –1-
▶프리랜서 번역가 인터뷰 시리즈
번역 인터뷰는 계속됩니다. / 브런치 연재 중
1.일본어 번역가의 연말 인터뷰 [셀프 인터뷰]
2.번역가 딸을 둔 현실주의자 엄마의 인터뷰
3.일본어 번역가의 승무원편 [셀프 인터뷰]
4.번역가를 오래 지켜본 글쓰기 모임장 인터뷰
5.번역가가 되기 전의 나에게 [셀프 인터뷰]
6.번역가의 초등학교 친구 인터뷰
누구도 청탁하지 않았지만 써 보는
<번역가의 가장 오래된 친구편 1>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있다. 서로 알게 된 지 거의 삼십 년이 되었는데, 특히 내가 번역가가 된 이후 이 친구와 함께한 시간이 유독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큰 결단을 내려 직장을 그만둔 뒤 프리랜서 번역가로 자리 잡기 위해 모든 정신을 일에 쏟았다. 일을 받으면 어느 곳에서든지 노트북을 펼칠 곳을 찾아서 일했다. 그만큼 몸과 정신에는 언제나 팽팽한 긴장이 돌았다. 경주마처럼 달린 덕분에 프리랜서 번역가로서 비교적 빨리 수익을 낼 수 있었다.
이런 나도 초등학교 친구 ‘J’와 함께할 땐 달콤한 힐링을 했다. 서로 집이 가까워서 어렵지 않게 만나고, 식사와 차를 즐기며 수다를 떨면서 일로 받는 스트레스를 얘기하다 보면 스트레스의 무게가 줄었다. 내가 “마감병”이라고 이름 붙인 병이 있는데, 마감할 일이 있으면 끝낼 때까지 몸이 쑤신다든지 아픈 증세다. 마감병은 번역물을 납품하면 언제 아팠냐는 듯이 사라졌다. 마감이 번역가에게 주는 영향은 지대했다. 나는 J에게 마감병을 설명하며 고민 상담도 했었다. J가 해 준 답변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고충을 털어놓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 것은 기억난다.
이번에는 초등학교 친구 J와 오래된 기억부터 지금의 모습까지 다룬다. 인터뷰로 나도 몰랐던 모습을 친구라는 거울을 통해 엿보았다. 어린아이가 번역가로서 어떻게 성장했는지도 인터뷰에서 확인해 보자.
① 가장 오래된 기억
Q1. 초등학생이던 저를 떠올리면, 어떤 아이로 기억하시나요?
꿈이 많은 아이였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2학기에 전학을 와서 처음 사귄 친구가 연경이었다. 연경이는 자신이 말이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다. 말이 많고 꿈도 많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의사가 되고 싶어 했고, 고학년 때는 비행기를 타는 승무원이 되고 싶어 했다. 승무원이 되면 가족들과 비행기도 무료로 탈 수 있고 좋은 혜택이 있다고 했다.
Q2. 하하, 의사는 부모님의 꿈이었어요. 승무원은 비행기를 탔을 때 승무원 언니들이 예쁘고 멋있어서 되고 싶었나 봐요. 이렇게 꿈 많은 어린 시절의 저에게서 유난히 두드러졌던 성향이나 습관이 있었을까요?
의욕이 넘치고 성격은 살가웠다. 활달하고, 말이 많고, 꿈이 많고, 희망적이고, 진취적인 아이였다. 학교에서 그룹 발표를 하면 앞으로 나가서 발표하는 것을 좋아했다. 친구들과는 두루두루 잘 지내는 성격이었다. 지금은 연경이가 I(MBTI)였다고 말하지만, 내가 볼 때 연경이는 내향적이지 않다. 초등학교 때 인기가 많았다. 당시 전학을 온 나에게 연경이는 소중한 친구고 큰 존재였다. 나는 처음 사귄 친구여서 연경이와만 깊게, 친하게 지냈다면 연경이는 반대였다.
② 번역가의 단서들
Q3. 제가 잊고 있던 제 모습을 말해줘서 고마워요. 예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닮은 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시나요?
예전과 같은 점은 여전히 밝고 구김살이 없다. 리액션, 공감을 잘하고 대화를 좋아한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는데, 번역 업무를 하면서 혼자 일하다 보니 사람을 적게 만나는 시기는 있었다.
Q4. 그렇다면 어린 시절의 저에게서 ‘지금의 번역가’와 닮은 모습이 보이셨나요?
연경이가 소설 등 책을 읽기를 즐겨 했다. 그런데 사실 번역가보다는 통역가가 연경이의 성향에 더 맞는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활달하고, 밝으니까. 번역 일을 시작하면서 혼자서 일에 몰두했고, 연경이의 열려 있던 마음이 살짝 닫혔다. 작년부터는 친구들과 새로운 사람들을 활발하게 만나면서 다시 밝은 느낌이 자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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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주는 틈새 정보: 여기까지 글을 읽으신 분은 내가 소위 말하는 활달한 성격 같은데 왜 정적인 번역가에 관심을 가졌을지 궁금할 테다. 그 이유는 아래에 나오니 일단 기다려 주시라.
나는 번역가를 하려면 이 일이 자신의 성향과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왔다.
인생을 되돌아보면 나는 혼자서 일할 때 성과를 내는 사람이었다. 예를 들어 어딘가에 소속되어 성과를 낼 때보다 혼자 뚝딱거리며 만들어서 어느 정도의 좋은 성과를 낼 때가 많았다. ‘혼자서 일하는 것’이 성향에 맞았다. 단기간 사람을 만나서 자기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통역도 좋아했지만, 번역가가 주는 분위기와 느낌을 더 원했다. 단, 앞서 친구가 말했듯이 나는 밖에 나가기 좋아한다. 주기적으로 지인과 만나고 혼자 일할 때도 집에서 일하기보다는 카페, 오피스 등을 이용하면서 혼자 일할 때의 답답함을 발산한다.
이는 오직 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집순이에 훌륭한 번역 실력을 지닌 사람 등 프리랜서는 프리랜서라는 이름답게 번역하면서 ‘프리’하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산다. 단, 혼자서 일할 수 있는 성향과 번역가로 자리 잡을 때까지 버틸 시간적, 재정적 여유가 있는지는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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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솔직한 관찰
Q5. 저는 많은 사람과 접하는 직종에 종사하다가 번역을 시작했는데요. 새로운 업무를 접하는 저를 봐오셨잖아요. 번역 일을 할 때 저는 자신을 조금 과하게 몰아붙이는 편인가요?
이전 직장 이야기가 나오니까 생각이 나는데, 연경이가 원래 사람을 좋아하고 일도 사랑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네 직장 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다. 사람과 많이 만나는 일을 하며 상처를 받고 사람과 그 일이 싫어졌던 것 같다. 이후 혼자 일하는 번역을 통해 많이 회복한 듯하다. 다친 부분이 회복되며 원래의 연경이로 돌아왔고, 그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번역도 하는 모습이 멋있다.
‘과하게 몰아붙인다’보다는 나는 멋있다고 생각했다. 업종을 변경하고 초반부터 일을 많이 해서 멋지다고 생각했다. 꾸준히 일이 들어오고 장기 프로젝트도 해 나가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경이는 계속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하더라.
Q6. 제가 자신을 가장 힘들게 하는 부분은 무엇 같아 보이시나요?
번역가 초창기에는 아무래도 불안한 위치에 있으니까 스트레스를 꽤 받은 것 같다. 지금은 어느 정도 연경이가 일을 조율할 수 있고, 업무량이 어떻게 되는지도 예상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예전보다는 불안함이 적어 보인다. 물론 마감 때문에 지친다고 할 때는 힘들어 보이지만. 자기 컨디션을 고려하면서 돈이 된다면 미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지금의 자세를 유지했으면 좋겠다.
1편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2편에서는 친구의 더욱 솔직한 관찰과 번역을 향한 생각을 들어 보겠다.
여담이지만 이번 친구와의 인터뷰에서는 서로 ‘애살 있다’와 같은 정겨운 부산 사투리를 특히 많이 썼다. 사투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도 신기하게 감미로웠다.
<소개>
언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 생각하는 8년 차 번역가.
일본어, 중국지역통상학,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일본어 번역가로서 출판, 비즈니스, 영상, 관광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본 여행과 글쓰기를 좋아하며 저서로 ⟪일본에서 한 달을 산다는 것⟫(공저), ⟪New Square 01 일상적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공저), 번역 매거진 ⟪번역하다⟫(공저), 역서로 ⟪일단 나부터 칭찬합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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