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편] 누구도 청탁하지 않았지만 써 보는
8년 차 프리랜서 일본어 번역가의 셀프 인터뷰
[승무원편]프리랜서 일본어 번역가의 셀프 인터뷰(1)는 아래와 같다.
[승무원편] 프리랜서 일본어 번역가의 셀프 인터뷰(1)
오늘은 1편에 이어 2편을 이어서 공개한다.
② 모든 것을 총동원했음에도
Q3. 함께 준비하던 사람이 합격했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나요?
당시에는 질투심에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지금은 모두의 행복을 바란다.
승무원 경쟁률이 워낙 치열했지만 나는 취업 준비를 열심히 했기에 합격한 친구들을 몇 명 보았다. 대표적으로는 원수지간이었던 친구 Y, 함께 승무원 스터디를 했던 친구 S가 있다.
한때 나와 유독 대립 각을 세우던 친구가 있었다. 눈이 크게 생긴 Y는 대학생 시절부터 다리에 멍이 들면 승무원이 되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로 승무원을 하고 싶어 하던 친구였다. 그토록 어릴 적부터 승무원을 염원하던 친구였으니 꿈의 방향과 노력, 운이 합쳐져 졸업도 하기 전에 메이저 항공사에 단번에 합격했다.
한편 이십 대 중반의 나는 미운 마음에 그 친구가 잘 풀리기를 바라지 않았는데, 내가 준비하던 승무원에 단번에 합격하자 깊은 절망감과 부러움, 질투심을 느꼈다.
나는 친구들보다 취업을 조금 늦게 했다. 당시 친구들이 취업한 후 페이스북에 ‘○○에 재직 중’으로 갱신한 것을 볼 때마다, 축하했지만 부러워서 잘 때 이불을 몇 번이나 발로 차기도 했다.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페이스북에 관심도 없다.) Y가 승무원이 된 후 ‘신입은 기내의 이곳에 꼭 앉아 보게 해 준다더라’라며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을 때는 지금도 기억날 정도다. 나는 그 친구의 목표와 승무원이 되었다는 결과만 알 뿐 과정을 진중하게 얘기해 본 적은 없다. 과정에서 어떠한 일과 감정이 숨 쉬었을지는 알지 못한다. 그 친구는 몇 년 후 승무원을 그만두었으며 이후의 행방은 모른다. 무슨 시험을 준비한다고 본 게 마지막이다.
다른 친구 S는 승무원 스터디를 함께 준비했던 친구다. 내가 힘들어할 때 당시 유행하던 공차를 마시며 위로해 준 친구이기도 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와 그 친구는 성향이 달랐다. 나는 사람은 좋아하지만, 일에서는 혼자서 일하고 창작할 때 가장 성과를 냈다. 그때 마음 또한 편했다. 한편 그 친구는 친구들 사이에서 중재하는 역할, 챙겨 주는 역할을 잘했다. 승무원 준비를 포기한 후 잠시 혼자 있던 흑역사 시절의 내게 말을 걸어 준 친구이기도 하다. S의 친근한 성격은 여러 명이 함께 일하는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잘 어울린다. 그 친구는 처음에 LCC 항공사에서 시작해 메이저 항공사로 이직했다.
지금은 모두의 행복을 바란다는 나지만, 취업에만 목매던 시절의 나는 친구들에게 오직 축하하는 마음만 품을 수 없었다. 부끄럽지만 위에서 말한 승무원이 된 친구 S에게 승무원이 되는 꿀팁이나 유명 강사를 소개해 준 것을 후회한 적도 있다. 그때 다른 사람과 같은 속도, 방향으로 가려고 무리하거나 부러워하기보다,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개발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더 빨리 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질문에 답하다 보니 과거에 부정적인 마음을 가졌던 나 자신이 이해는 되지만 안타깝기도 하다. 자책을 많이 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세상을 비출 수 있는 빛과 부패를 막을 수 있는 소금, 즉 빛과 소금이다. 자책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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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주는 틈새 정보: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 나만의 길이 있다. 자신을 잘 파악해서 자신만의 길로 살아가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면 요새는 심리 검사도 많지 않은가. 이러한 도구를 활용해서라도 자신을 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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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그리고 당시 주변 상황
Q1. 그때의 실패가 이후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나요?
1편에서 말했듯 그때 실패했지만 승무원 면접 준비를 하며 쌓은 면접 스킬, 말투나 발표 능력 등은 이후 일본어를 가르칠 때나 통역할 때 등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 취업한 첫 직장에서는 경쟁률이 몇천 대 1이었다는 신문 기사가 났는데, 그때 합격할 수 있었던 것도 승무원 면접 준비를 하며 갈고닦은 대응 실력 덕분이었다.
실패하고 나서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내가 어떠한 장점이 있고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쓰디쓴 경험을 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요즘엔 가끔 친구들과 있을 때 무심코 말이 나온다. “나 옛날에 승무원 준비했었어~”라고.
이 말을 하면 그 시절 힘든 마음보다 뿌듯함이 먼저 올라온다. 후회도 없다.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준비한 덕분일까?
Q2. 승무원이 되지 못한 것이 결과적으로 나를 어디로 데려왔나요?
사실 승무원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현재의 나는 번역을 하고 있었을 테다. 1편에서 말했듯 원래 꿈이 번역가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십 대에 피어오른 호기심으로 여러 일에 도전하며 점차 나 자신을 알아갔다. 그저 돌진하지만 말고 방향이 올바른지 계속 뒤돌아보는 여유가 있었다면 실패를 더 줄일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결론은 이곳에 이르렀다. 나는 예전과 다르지만 원래의 길을 찾은 사람이 되었다.
④ 현재
Q1. '모든 걸 총동원해도 안 된 일'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로 남았나요?
1.모든 걸 총동원해도 안 된 일을 떠올리면 마음은 아프지만, 더 단단해졌다.
2.세상에는 모든 걸 총동원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으며, 이것은 장기적으로 봤을 땐 오히려 좋은 일일 수도 있다.
3.사회적 기준에 너무 자신을 맞추려고 하면 과도하게 힘을 총동원하게 된다. 느리더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야 한다.
4.자신을 너무 몰아붙이거나 자책할 필요는 없다.
Q2. 그래도 그 시간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 같나요?
내가 어떤 일이 어울리는 사람인지,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할지 더 고심하고 정할 것 같다. 그럼에도 승무원 준비를 시작한다면, 너무 쫓기듯이 자책하면서 준비하지 않을 것이다.
Q3. 지금의 내가 말하는 ‘옳은 선택’이란 무엇인가요?
승무원이 되지 못한 건 분명 실패였다. 하지만 번역가가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돌고 돌아 나는 결국 나다운 길을 선택하고 지금도 걷고 있다. 어쩌면 옳은 선택이란 나다운 것을 뜻할지도 모른다.
<소개>
언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 생각하는 8년 차 번역가.
일본어, 중국지역통상학,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일본어 번역가로서 출판, 비즈니스, 영상, 관광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본 여행과 글쓰기를 좋아하며 저서로 ⟪일본에서 한 달을 산다는 것⟫(공저), ⟪New Square 01 일상적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공저), 번역 매거진 ⟪번역하다⟫(공저), 역서로 ⟪일단 나부터 칭찬합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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