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편] 프리랜서 일본어 번역가의 셀프 인터뷰(1)

by 리나

[승무원편] 누구도 청탁하지 않았지만 써 보는

8년 차 프리랜서 일본어 번역가의 셀프 인터뷰


‘총동원해’.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이 올리신 마지막 칼럼의 제목은 ‘총동원해’였다. 거기서 나온 책의 한 문구를 본다.


"총동원해. 그 문장을 통해 그는 세상에서 아무리 모든 것을 총동원해도 이뤄질 수 없는 꿈이 있다는 걸 납득했다. 눈물이 흐르고, 그다음에 우울이 지나갔으며,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슬픔을 납득했다."


참으로 그렇다. 당연한 말이다. 세상에는 내가 품고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도 이룰 수 없는 꿈이 있다. 몇 년 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안 되길 천만다행이야, 나랑은 안 맞았어’라고 생각했음에도, 그때 당시에 내가 원하는 일을 이루지 못했을 때는 눈물만 흘리며 슬픔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나뿐만 아니라 지금 취업 준비를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러나 걱정하지 말자. 아직 인생 끝 아니다.


진부한 말일지만 실패에서 무언가를 배워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나는 이십 대 초반에 가능성과 힘을 총동원해 승무원 준비를 했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결국 실패하고 너덜너덜해졌다. 여러 가지를 되돌아보았다. 처음에는 수치심과 함께 내가 왜 실패했는지를 되새겼다. ‘내가 왜 실패했을까, 그때 왜 지원했을까? 조금 더 준비하고 지원할걸…’


그다음에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게 되었다. 나는 외국어를 전적으로 쓰는 직업을 꿈꿨는데(일본어를 사용하는 직업이 필요), 일본어가 나오면 가장 집중도가 올라가는데(즐거움을 주는 일), 겉으로는 조용해 보여도 새로운 일을 직접 벌이고 해나가는 걸 좋아하는데(프리랜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여기에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며 경험한 조각들이 합쳐져 일본어 프리랜서 번역가 8년 차인 지금의 내가 되었다. 물론 앞으로도 고민해 나가야 하지만…


이번 인터뷰에서는 이십 대 초반, 승무원을 준비하던 시절을 되돌아보며 얻은 깨달음을 번역과 연관 지어 인터뷰해 보았다. 승무원 준비는 실패한 흑역사라서 글로 쓰기는 처음이다. 합격 후기가 아니라니 실패를 되돌아보는 후기라니.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글로 쓸 수 있을 만큼 단단해졌다고도 볼 수 있다.


①그때의 나 다시 만나기

Q1. 승무원이 되고 싶었던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당시 23살 정도였던 나는 한 살 어린 대학교 후배가 아시아나 항공의 승무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보다 조금 더 전에 승무원 학원에서 수강생을 모집할 때 돈이 너무 비싸서 등록하지 못했는데, 몇 개월 뒤 후배가 승무원이 되었다고 하자 기회를 놓친 것 같아서 슬펐다.


엄마에게 말했더니 딸이 슬퍼하니까 엄마 또한 속이 상하신 것 같았다. 이후 엄마는 학원에 등록할 돈을 마련해 주셨다. 그렇게 나는 승무원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답변을 쓰니 나를 지원해 준 엄마에게 다시 한번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설날 부모님 선물을 얼른 사야겠다…


결론. 승무원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친구가 부러워서’였다.


Q2. 그 시절의 나는 무엇을 가장 간절히 원하고 있었나요?

일본어 번역가를 꿈꿨다. 그보다도 한참 전, 우연히 목욕탕에서 신문에 권남희 일본어 번역가님의 ‘번역에 살고 죽고’ 책 광고가 실린 것을 보고 책을 사서 읽었다. 당시 번역가의 업무는 전혀 모르니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지만 혼자서 일한다는 점과 정적인 일이라는 점, 일본어를 살리는 일, 책과 관련된 일(알고 보니 책 외에도 다양한 번역이 있었지만)이라는 점이 나의 마음을 끌었다.


하지만 20대 초반에는 도무지 어떻게 번역가가 되는지 방법을 찾기 어려웠다. 주간 번역가라는 네이버 카페에도 가입하고 관련 책도 읽고 아카데미도 찾아봤지만 당시 내겐 프리랜서를 지속할 자금력, 실력이 부족했다. 지방에 살아서 아카데미에 방문하려면 용기를 내야 했다. 공부를 더 해야 했고 돈도 벌어야 했다. 주변 친구들은 대기업을 지원한다면서 SSAT(삼성그룹의 직무적성검사, 현재는 GSAT)나 토익 공부에 열을 올렸다. 결국 나도 번역가의 꿈은 돈을 벌고 공부하며 생각하자고 결론 내린 뒤 다른 친구들처럼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많은 사람이 그랬듯 성공적인 취업을 간절히 바랐다.


② 모든 것을 총동원했음에도

Q1.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나요?

충분하다고 느껴서 승무원 준비를 그만두지는 않았다.


‘승무원’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비행기를 꽤 타 본 지금의 나는 승무원이 짐을 잘 올릴 수 있도록 키가 커야 하고 항공사 이미지에 맞는 깔끔한 인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항공사에는 수많은 청년이 지원하고,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1차 면접이 끝나는 경우도 있었으므로 생각보다 외모, 스타일을 많이 볼 수밖에 없다.


나는 AI로 빚어낸 듯한 미인은 아니지만 나름의 매력과 개성, 귀여운 외모를 지녔다. 그러나 승무원을 준비할 때는 승무원 면접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느라 주변 사람에게 험한 소리도 꽤 들었다. 승무원 학원에서 턱 밑 쪽이 발달해서 얼굴이 커 보이니 이 부분을 싹 잘라 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 수업 시간에 앞으로 불려 나가서 몇십 명의 수강생에게 얼평을 당한 적도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일타 강사라는 사람에게는 피부에 요철이 있고 시건방지게 지원을 많이 했다고 수강생으로 못 받아준다며 내쫓긴 적도 있다. 마지막 사건은 충격이 꽤 컸다. 눈물도 흘렸을걸? 그다음 날 친구와 만나서 공차를 마시며 신세 한탄도 했다. (그때 날 위로해 준 친구에게 고맙다!)


승무원이라는 별에 동그라미인 나를 끼워 맞추기 위해 자신을 깎아내던 시절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취업난이었기에, 많은 취업 준비생이 마음에 생채기가 생기면서도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다. 당시 항상 함께 다니던 승무원 스터디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오래 하지 못했을 것이다.


Q2. 그럼에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당시에는 패배감, 절망이었고 지금은 위로를 건네고 싶은 마음이다. 인생에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165cm의 키인 내가 170 이상으로 보이려고 11cm나 되는 구두를 신고 승무원 면접을 봤었다. 눈길을 끌기 위해 취미도 특이하게 써 보고 장점인 깔끔한 목소리로 어필하려고도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면접관들은 현직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니 일할 때 진짜 승무원 업무에 필요한 인재가 누구인지는 바로 아셨을 테다. 나는 모든 힘을 총동원해도 합격하지 못하는데 한 번에 쉽게 합격하는 친구도 있었고, 그러한 친구들은 이미지(외모, 키 등)가 비슷비슷했다.


나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깊게 돌아보지 않았다. 승무원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리기만 하느라 내가 진정 원하는 직업, 인생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기를 소홀히 했다. 그저 달렸을 뿐이다. 사실 여러 명이 함께 일하는 승무원이라는 업무 형태는 내 성향에 잘 맞지 않는다. 일은 결국 내가 즐겁게 살기 위해 하는 것인데 말이다.


취업이나 일 때문에 고민이라면, 타개책을 찾기 위해 달리고만 있다면 잠시라도 멈춰서 이것이 내가 진짜 원하는 감정, 일인지 생각해 보자. 안 그래도 취업이 어려운데 쉼표를 넣는 건 어려운 일임을 잘 안다. 하지만 꼭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지 않으면 책 <엄마가 죽어서 참 다행이야>에 나오는 어린 제넷처럼 ‘싫어, 이건 너무 고통스러워, 난 이걸 안 할 거야’라고 하면서도 괜찮은 척하는 슬픈 아이가 될지도 모른다. 제넷의 할아버지가 제넷에게 해 준 “난 그저 네가 재미있게 살았으면 싶단다.”라는 말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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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주는 틈새 정보: 일을 정할 때 필요한 능력

1.내 가슴을 뛰게 하는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찾아서 돌진하는 용기

2.돌진하면서 방향이 올바른지 계속 뒤돌아보는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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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승무원 면접에는 불합격했지만 이때 노력을 들인 보이스 트레이닝, 면접 기술 연습, 외국어 회화 등은 이후 직장을 구할 때나 통역, 일본어 강사를 할 때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냉철하게 파악하기보다는 일단 부딪치고 경험하면서 경험치를 쌓는 성격이던 내가, 멈추고 되돌아볼 수 있는 지혜를 지니려고도 노력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승무원 준비 경험은 지금 인생에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1편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주에 다음 편으로 찾아오겠다. 다음 편에서는 함께 준비하던 사람/원수지간이던 지인이 승무원에 합격했을 때의 이야기, 승무원이 되지 못한 것이 결과적으로 나를 어디로 데려왔는지에 관한 이야기 등을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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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언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 생각하는 8년 차 번역가.


일본어, 중국지역통상학,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일본어 번역가로서 출판, 비즈니스, 영상, 관광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본 여행과 글쓰기를 좋아하며 저서로 ⟪일본에서 한 달을 산다는 것⟫(공저), ⟪New Square 01 일상적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공저), 번역 매거진 ⟪번역하다⟫(공저), 역서로 ⟪일단 나부터 칭찬합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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