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번역가 인터뷰 시리즈
번역 인터뷰는 계속됩니다. / 브런치 연재 중
1.[셀프 인터뷰]일본어 번역가 연말 인터뷰
2.[엄마]8년 차 번역가 딸을 둔 현실주의자 엄마의 인터뷰
3.[셀프 인터뷰]일본어 번역가의 승무원편
4.[글쓰기 모임장 인터뷰]번역가를 오래 지켜본 사람
5.[셀프 인터뷰]번역가가 되기 전의 나에게 묻다
누구도 청탁하지 않았지만 써 보는
[셀프 인터뷰]8년 차 번역가가 되기 전의 나에게 묻다
이번 셀프 인터뷰에서는 번역가가 되기 전부터 번역가가 됐을 때, 그리고 번역가가 된 이후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겠다. 무엇보다, 지나온 시간을 글로 남길 수 있어서 기쁘다. 스스로 글로 남길 수 있을 정도로는 살아온 것 같아서.
번역가가 궁금하거나, 번역가를 꿈꾸거나, 프리랜서가 궁금하거나, 아니면 우연히 이 글에 들어왔거나, 그것도 아니면 내가 궁금하거나, 무엇이든 괜찮다.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해 보자.
① 시작의 기억
Q1. 번역가라는 직업을 처음 의식하게 된 순간은 언제였나요?
번역가라는 직업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의식하게 된 순간은 권남희 번역가의 책을 알게 됐을 때다.
당시 권남희 번역가의 <번역에 죽고 살고>라는 책이 발매됐는데, 신문에 책 광고가 실린 적이 있다. 동네 목욕탕에서 씻고 나왔는데 아주머니가 신문을 펼쳐서 보고 있었다. 거기에 책 광고가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고 ‘일본어’, ‘번역’이라는 단어를 보고 저절로 시선이 쏠렸다. 그래서 책을 사서 읽었다.
책 <번역에 살고 죽고>는 “번역은 화려하고 엄청난 직업입니다!”라고 허황하게 선전하는 책이 아닌 현실적이고 개인적이면서도 번역가로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가 실린 책이었다. 그 이후로 학교 도서관에서 한국어로 번역된 다른 일본 소설을 보면서 조용하게 일하는 번역가의 모습을 꿈꿨다. 이유는 모르지만 날씨 좋은 날에 창문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번역하는 모습을 자주 생각했다. 책 <번역에 죽고 살고>는 지금도 사랑받는 책이니 번역가를 꿈꾼다면 읽어 보길 추천한다.
Q2. 책을 통해 번역가라는 직업을 의식했다는 게 재밌네요. 그때의 나는 번역가라는 일을 현실적인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었나요, 아니면 하나의 꿈처럼 느끼고 있었나요?
꿈처럼 느꼈다. 대학교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탄탄하고 나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직업을 찾아야 하는데, 번역가가 되는 방법은 어렵게 느껴졌다. 보통 일반 회사에 지원할 때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열심히 써서 지원하고, 인적성 검사 후 몇 차례 면접을 거쳐서 합격이 되는 순서가 있었고 많은 대학생이 이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번역은 어떠한 자격증을 취득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력을 쌓아야 하는 일이었다. 경력을 쌓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공부도 더 많이 해야 한다. 이십 대 초중반이었던 나는 결국 다른 곳에 취업해 돈을 벌고, 안정적으로 되면 번역은 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번역의 꿈은 나의 머릿속에서 뒤로 미뤄졌다.
②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
Q3. 번역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쉽게 놓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신세계 계열 그룹의 대졸 공채에 합격해서 일을 하는데, 이때의 일도 열정적으로 임했고 즐거웠다. 지금도 회사를 생각하면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이 먼저 든다. 복지 등으로 직원을 많이 생각해 주는 회사였으니까. 하지만 진급할 때 겪는 경쟁이나 여러 사람과 접해야 하는 일의 특성상 마음이 지칠 때도 많았다.
신기하게도, 그럴 때마다 내가 대학생 때 뒤로 미뤄 두었던 번역가가 항상 생각났다. 원래 꿈이었다고는 해도 힘들 때마다 생각나다니, 번역이 내게 의미 있는 직업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번역가 관련 책과 인터넷 포스팅을 보는 날이 늘어 갔다. 일본 매체를 접하고 공부하는 시간도 늘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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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주는 틈새 정보
당시 나는 번역가 카페(네이버 카페 주간 번역가), 각종 번역가 관련 서적, 블로그에 번역가들이 쓴 글을 자주 보았다. 그땐 인스타그램이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인스타그램뿐만 아니라 스레드 등 많은 SNS가 있다. 번역가는 기본적으로 기록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다. 번역가가 되고 싶다면 그런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궁금증을 풀고 꿈을 키워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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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번역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강하게 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나요?
어느 날 다시 힘든 마음에 번역가 관련 글을 읽는데, 우연히 내가 자주 보던 번역가의 블로그에서 번역 컨설팅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았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 전에는 언제나 설렘과 걱정이 따른다. 그때 내 나이 스물아홉.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걱정되어도 결정하려면 이때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오랫동안 해보고 싶던 일이니 시도해 보지 않는다면 후회할 터였다. 나는 번역 컨설팅을 받기 시작했다. 얼마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번역가로 자리 잡기 위해 모든 시간을 투자했다. 참고로 내가 참여했던 번역 컨설팅은 이제 운영되지 않는다. 다른 번역 컨설팅에 관심이 있다면 SNS에 컨설팅하는 분들이 많으니 조사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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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가 주는 틈새 정보
번역가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가는 분도 보았고, 번역 아카데미나 컨설팅을 받는 분도 보았다. 즉 선택지가 여러 가지다. 나는 자신의 일본어 실력으로 작은 일이라도 받아서 바로 돈을 벌고 점차 규모를 키워 나가고 싶었다. 그때도, 지금도 일단 돈을 벌면서 무언가를 키워 나가고 싶었다. 나는 돈이 걸린 일을 해야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는 사람이기도 했다(지금은 조금 바뀐 것 같기도 하지만).
당시 엄마는 대학원을 공부해서 가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번역 컨설팅을 받고 실적서를 만들어서 번역 회사에 지원하기 등 실제 업무를 다루기 위해 힘을 쏟았다.
자신의 성향(예: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편인지, 하나의 일을 꾸준히 하는 편인지 등)과
상황(예: 싱글이라서 자신만의 시간이 많은지, 결혼해서 일정 시간만 마련할 수 있는지 등),
번역가로 자리 잡는데 허락된 시간,
꿈(예: 출판/영상/기술 번역 중 어떤 부분을 주로 하고 싶은지 등)을 구체적으로 생각해서 결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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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버티던 시간
Q5. 번역가 일을 시작한 초기에 나는 ‘1년만 버텨보자’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의 나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나요?
번역가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당연히 일이 별로 없었다. 직장에 다닐 때와는 달리 내가 일을 찾는 데 찾아 주는 사람이 없으니 울적했다. 직장에 다닐 때도 일이 없으면 찾아서, 만들어서 하는 성격이었기에 번역가가 된 후에도 일을 벌이고 만들었는데, 성과가 없으니까 슬펐다. 당시 남자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일이 없다고 일본어로 술주정을 한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니까 애잔하면서도 내 행동이 재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블로그에서 번역가가 자신이 일한 지 1년이 되었다고, 전업 번역가로 1년을 버틸 수 있을지 몰랐는데 지금은 코스메틱 분야 등에서 일을 맡으면서 일을 해나가고 있다고 자축하는 글을 보았다.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사람이었다. 사진에는 자신이 직접 산 케이크가 있었다. 당시 번역가로 계속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내게 1년간 버틴 이 사람은 참 대단했고 당연히 케이크로 축하받아야 할 분이었다. 나도 1년을 버티면 케이크를 사서 자신에게 축하하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④ 돌아보는 질문
Q6. 결국 1년을 넘기게 되었을 때, 그 순간의 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막상 1년을 넘겼을 때는 바빠서 케이크로 자축하겠다는 생각을 잊어버렸다. 당시에는 바쁘게 일하고 더 많은 일을 받고 싶어 했다. 서투른 분야는 공부를 더 해서라도 익숙해지고 싶었다. 데일리로 하는 번역을 하고 있었고 규모가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부지런히 일했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일을 여기저기서 다 받고 번역 회사를 늘려가던 시기였다.
이때 나는 자축하지 못했지만, 직업, 연차와 상관없이 일하는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열심히 일한 자신을 위해 상을 주고 버텨낸 자신을 기록하는 게 좋다. 축하한 기록을 남겨 두면 자신뿐만 아니라 같은 직종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도 힘을 줄 수 있으니까.
Q7. 지금 돌아보면 저는 언제부터 번역가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느 날 통역을 하다가 처음 만났을 때 건넬 명함이 필요한 상황이 있었다. 그때 명함을 만들면서 ‘통·번역가’라는 말을 처음 새겼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번역가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
⑥ 마무리
Q8. 지금의 저는 번역가라는 직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정적으로 보이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들. 번역가는 프리랜서다. 프리랜서는 자신이 일을 찾아서 받아 와야 한다. 프로젝트마다 내용이 다르니 빨리 적응하고 알맞은 결과물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일이 없을 때는 다른 일은 없는지 끊임없이 살펴보고 삶을 꾸려 나가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은 기어이 이루고 말겠다는 포부와 대범함, 그러면서 꼼꼼함도 필요하다. 프리랜서 번역가가 겉으로는 온화해 보일지라도 속으로는 날카롭고 분주하게 움직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Q9. 앞으로도 번역가로서 계속 붙잡고 싶은 태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기존의 좋은 것을 유지하면서 확장하려는 태도. 뭔가 옛것을 유지하면서 발전해 나가자는 문화재 팸플릿에 나올 법한 말이라서 재밌지만 맞는 말이다. AI의 등장으로 변화하는 번역 시장에 유연하게 적응하면서 돌파구를 찾아 나가야 한다. 좋은 일들은 유지하고, 내가 지닌 강점을 확장해서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선 새로운 일에 뛰어들 용기와 동시에 안 좋은 것은 거를 수 있는 꼼꼼함이 필요하다.
<소개>
언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 생각하는 8년 차 번역가.
일본어, 중국지역통상학,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일본어 번역가로서 출판, 비즈니스, 영상, 관광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일본 여행과 글쓰기를 좋아하며 저서로 ⟪일본에서 한 달을 산다는 것⟫(공저), ⟪New Square 01 일상적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공저), 번역 매거진 ⟪번역하다⟫(공저), 역서로 ⟪일단 나부터 칭찬합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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