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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경 Mar 28. 2023

너의 종착역

에세이

말투에서 너의 인생이 느껴졌다.


첫 만남은 부산 서면의 롯데 백화점이었다. 메시지만 주고받다가 대구에 있던 그가 내가 사는 부산으로 내려온 것이다. 처음 만나서 말을 섞자 대구 사투리와는 달라 살짝 이질감이 느꼈다. 대구 사투리는 부산과 비슷하지만, 내뱉을 때의 속도는 부산보다 느리다. 그런데 남자친구는 대구 사투리에 서울 표준어의 부드러운 억양이 얹어진, 조금 가녀린 느낌마저 드는 말투였다. 좋게 말하면 부드러운 사투리였고, 나쁘게 말하면 여러 지역의 억양이 섞여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말투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20대에 서울 잠실에서 취업 준비생으로 지냈다고 한다.


여러 지역의 말투가 섞인 사람답게 그는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고 자유분방했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일, 부정적인 일이 있다면 긍정에 먼저 손을 뻗을 사람이었다. 나에게 부족한 면을 지닌 그가 좋아 그때부터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귀고 있다.


지금은 부산에서 직장을 구해 다니고 있다. 동전에도 양면이 있듯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 이면에는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단점이 있어 내 속을 태울 때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인내심과 목표가 생긴 건지 우직하게 일하고 있다. 잠귀가 밝은 덕분에 매일 7시 정각에 일어나서 준비를 시작한다. 추운 겨울날에도 귀가 빨개질 때까지 버스를 기다리고, 탑승한 후에는 1시간 정도를 달린다. 소위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에 충실한 회사이기에 꼴불견 상사의 포효를 정면으로 받으며, 그럴 때는 자주 악몽을 꾼다. 점심시간에는 상사들의 밥 먹는 속도가 빨라서 항상 허겁지겁 먹는다. 운전할 수 있는 직원이라는 이유로 앞서 언급한 상사가 무시무시한 운전 할당량을 준 바람에, 부산의 방방곡곡을 다녀서 이제는 나보다 부산 지리에 더 빠삭할 정도다. 회사에 마음 맞는 직원이 몇 명이라도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려나.


어느 날 우연히 남자친구가 매일 이용하는 버스를 혼자 탔다. 거의 첫 정거장이어서 버스는 고요하고 창문을 때리는 바람 소리가 크게 들렸다. 문득 궁금해졌다. 남자친구는 매일 이 버스를 타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자기도 모르게 아픈 감정이 솟구치지는 않았겠지? 만약 그랬다면 어떻게 그 감정을 꾹 눌렀을까? 이 쳇바퀴 돌 듯 똑같이 흘러가는 버스 안에서 남자친구는 무엇에 희망과 행복을 느꼈을까? 괜스레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날 것 같다. 부디 내가 너무 감상적인 것이기를 바란다. 실제로는 단순하게, 아무런 생각 없이 이 버스에서 시간을 보냈기를 바란다.


10대에는 학교를 의무적으로 간 것처럼 직장도 출근하기만 하면 당연히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달랐다. 매일 회사에서 벌어질 폭풍 같고 예측할 수 없는 일에 무너지지 않으리라 각오를 다지고 출근했었다. 버티기 위해서는 나의 강한 의지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남자친구에게도 험한 직장 생활에서 살아갈 원동력이 될 강력한 의지가 항상 함께하기를 바란다. 매일 아침 뜨는 태양처럼 눈부시도록 반짝이는 꿈이 남자친구와 함께하기를, 지금도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잘될 수 있다는 믿음이 함께하기를, 이곳 부산을 종착역으로 자리 잡은 남자친구에게 무한한 행복이 함께하기를 기도한다.


-프리랜서 김연경


#에세이 #남자친구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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