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이겨낸 첫 수술기 [ 1회 ]
프롤로그
지독히도 나는 건강에 무식하고 무지한 여인이다. 솔직히 대학 졸업 후 건강검진을 제대로 받아본 건 작년 겨울이 처음이다. 그것도 감기 때문에 찾아간 내과에서 혈색이 너무나 안 좋다며 피검사를 해보라고 권했다. 그 순간 무슨 불안이 엄습했던 걸까? 처방전을 손에 들고 간호사에게 나라에서 해주는 무료 건강검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고 나도 가능한지 질문을 했고 그렇다면 나도 그 혜택을 누리게 해달라고 졸랐다. 연말이라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그날 나의 몰골과 상태는 같은 여인으로써 거부하기 힘든 연민을 불러내기 충분했고 그녀들은 다음 주 월요일 병원 문 열자마자 생긴 틈을 비집어 나를 밀어 넣고 시간을 엄수해달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병원문을 나왔다. 그날의 하늘은 유난히 서슬퍼레 보였다. 그리고 몸도 마음도 추웠다. 아주 많이... 검진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내시경 검사라는 것이 진짜 기분도 더럽고 주변도 더럽히고 뒤끝도 꿀꿀했고 나머지는 그저 병원에 와서 하는 일상적인 검사였다. 그리고 결과가 나왔고 정상인보다 훌쩍 낮은 빈혈 수치에 의사는 강한 놀람과 함께 경고의 추임새를 임팩트 있게 나에게 주입시켰고 한 달치의 빈혈약과 고기를 많이 먹으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고기를 어떻게 많이 먹지? 그래 점심부터 고기위주로 달려 볼까? 주변 식당을 두리번거리다 새로 생긴 고깃집 앞에 크게 써붙인 점심 메뉴가 눈에 들어왔다. 차돌 된장 스페셜 7000원. 오늘 점심은 고기가 들어간 된장찌개다. 입맛이란 게 고약하다. 먹어야 되는 음식 앞에선 심술과 투정을 부린다. 고기 냄새가 비위를 자극한다. 결국 몇 술 뜨지도 못하고 수저를 놓고 약봉지를 움켜쥐고 가게를 나왔다. 그 후 나는 지인과의 약속 때마다 고기 타령을 했고 주말이면 샤부샤부를 해 먹겠다고 푹풍검색후 무쇠 냄비를 주문했고 오늘내일 개봉을 미룬 냄비는 박스채 나의 베란다 한구석을 차지했고 새해가 또 밝았다. 연초부터 나의 컨디션은 계속 바닥이었다. 자꾸 피곤하고 쉽게 지쳤다. 구정을 지내고 동생네 가족과 함께 일어서는 나를 엄마가 조용히 다시 앉히며 귀속말로 속삭인다. " 좀 있다 따로가. 너한테 줄 게 있다." 동생네 가족을 보내고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투덜 되는 나에게 엄마는 공진단 두 박스를 챙겨주신다." 니 얼굴이 영 말이 아니다. 니몸은 네가 챙겨라. 자식 아픈 거 나는 못 본다." 순간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나이 든 부모를 위해 내가 챙겨야 할 것을 마흔을 훌쩍 넘기고 혼자 사는 딸에게 구정 끝에 남은 음식 대신 비싼 공진단을 가방에 담으신다. 나는 역시 불효자다. 제발 건강하게 아프지 말고 살기라도 해야 이 불효를 십원 어치 갚는 길이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내내 생각했다. 이제 건강하기만 하면 되는 거다. 다른 건 욕심내지도 않겠다고. 그러나 내 일상은 그렇게 달라지지 않았고 나의 게으른 식사와 저녁이면 홀짝이는 와인은 계속되었고 언제부터인가 습관적으로 해치워야할 가사노동 후엔 맥주 한잔으로 점심은 대체되었고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며 방구석에 맴도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샤워를 하고 바디로션을 바르는데 어느새 볼록 나온 아랫배가 딱딱하다. 배가 나온 것도 짜증 나는 일인데 게다가 이 딱딱함은 뭐지? 심하게 체지방이 자리를 잡은 건가? 그러길래 맥주 좀 줄이라고 했지. 내일부터 운동 좀 하고 밥도 좀 줄이고 좀 관리하고 살자. 그 후에도 내 아랫배는 여전히 볼록 나와 있었고 나의 상의는 반드시 배를 덥어야 했고 점점 나의 신경이 무뎌갈 무렵 나는 참을 수 없는 허리 통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아직 생리를 시작할 때가 한참 남았으니 생리통도 아닐 것이고 왜 이러지? 운동부족인가 역시? 한주 부지런히 한 시간씩 걷기를 했고 약속을 잡고 매일 외출을 했다. 그리고 주말부터 다시 시작된 잠을 이룰 수 없을 것만큼의 심한 허리 통증은 빠른 생리로 이어졌고 엄청나게 쏟아지는 생리혈은 나를 순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래도 생각했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이런 거야. 며칠 지나면 괜찮을 거야. 그러나 나의 이 망할 긍정마인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강한 건강의 위협을 느낀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부인과를 찾게 되었다. 나보다 몇 살은 어려 보이는 긴 생머리의 얼굴이 갸름한 여 의사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자궁 속에 10센티가 넘는 근종이 자리 잡고 있음을 하이 소프라노 목소리로 나에게 알리고 수술을 해야 하니 소견서를 써줄 터이니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리고 나와 시선도 맞추지 않은 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말한다."그러니까 자기 몸에 좀 예민하게 우왕 떠는 것도 나쁘지 않다니까. 이렇게 둔해서 병을 키우는 것보다. 어떻게 이렇게 모를 수 있었을까? 아랫배에 딱딱한 거... 만져질 텐데. 그게 다 혹인데..." 그렇게 그녀는 날카롭게 비수를 꽂고 소견서를 내 손에 쥐어주며 동정하듯 내뱉는다. " 걱정 말아요. 수술하면 금방 나으니까. 앞으로 신경 쓰고 살아야 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당신의 말은 알겠다고 충분히... 지금 내가 수술을 해야 한다는 거잖아. 수술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술이라는 걸 해야 한다는 거잖아. 멍하니 병원문을 나왔다. 오늘따라 날씨가 너무 좋구나. 바람도 좋고. 다 좋은데 나만 안 좋은 거구나... 그런데 기분이 이상했다. 생각보다 너무 침착했다. 내가... 그 후 방문한 대학병원에서는 아주 쿨하게 점심 약속을 하듯 내 수술 날짜를 잡아 주었고 근종만 제거할지 자궁을 적출할지 마치 점심메뉴의 A세트와 B세트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것처럼 그저 결정만 하라고 했다. 입원 수속을 하고 나는 병원에서 집까지 한없이 걸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이 안 났다. 거의 집에 다다랐을 무렵 문뜩 걱정이 들었다. 수술... 혼자서 버틸 수 있을까? 엄마에게 연락해야 하나? 구정 때 나를 배웅하던 아빠와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니다. 대단한 수술도 아닌데 친구나 후배에게 부탁하면 되는 거다. 수술할 때만 누가 옆에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하는 거다. 혼자 이겨내야 한다. 다 내탓인 거니까. 누가 그렇게 살랬어? 좀 신경 쓰고 살지. 자... 보자. 음...다음 주 월요일 누가 와줄 수 있을까?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진다. 솔직히 누군가에게 부탁을 한다는 것은 부탁을 받는 것보다 나에겐 힘든 일이다. 그래도 그날만은 누군가에겐 말해야 한다. 나의 오랜 지인 인 그녀는 요즘 어떤 사건으로 나와 다소 소원해졌고 집 비밀번호를 아는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고 마음이 잘 통하는 그녀는 회사의 중역이고 나를 친언니로 생각하는 그녀는 늦깎이 신혼이고 최근에 가장 자주 만나는 그녀는 한 달 동안 여행 중이고 프리랜서 디자이너인 같은 동네에 사는 그녀는 이런부탁을 할만큼은... 역시 나는 결정적일 때 늘 혼자다. 어려부터 그랬다. 이럴 때 나의 인연들은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좀 서글프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이겨낼 수 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좀 더 내 인연들을 꺼내보자. 그날 내 손을 잡아 줄 보석같은 인연을... 지금까지 인생을 그리 헛살지 않았다고 믿으니까.지금부터 약해지면 안되는 거다. 절대로...
1편_끝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