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anego emi
바다를 본 적이 있나요?

월요일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후덥 한 새벽 공기는 밤새 나의 숙면을 방해했다. 아~ 이제부터 여름과의 아니 여름 더위와의 사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한 여름의 태양의 사주를 타고난 나는 더위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미국 유학시절, 뜨거운 태양 아래 몇 시간씩 걷는 것도 거뜬했고 몇 년 전 떠난 남미 여행에서도 모두 손사래를 치던 오후의 햇살 아래 나는 당당했다. 물론, 돌아와서 그 태양은 건조한 나의 얼굴에 기미라는 엄청난 스크레치를 남겼다. 그러던 내가 몇 년 전부터 여름에 맥을 못 춘다. 물론, 동남아 더위에 가까웁게 변신한 서울의 날씨도 문제이지만 이깟 더위 냉방기구와 살얼음 낀 생맥주 한잔으로 날려버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어 제대로 살 수가 없다. 무기력과 어지럼증과 떨어지는 식욕과 이어지는 불면은 나를 바싹바싹 마르게 했다. 언제나 말라 비틀어 지기 직전에 나는 지인들에게 구조되어 여름날의 생명을 연장하고 했다.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멍하니 좀비가 되어 닥치는 대로 책을 읽거나 정신을 쏙 빼놓는 미드로 지독한 여름을 힘들게 난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문득 내가 바다를 본 적이 있던가?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났다. 겨울바다든 봄바다든 여름바다든 가을바다든 바다를 보러 간 적이 언제였지? 물론 자동차 속에서 기차 속에서 비행기 속에서 바다를 내려다본 적은 있지만 바다라는 녀석과 제대로 눈을 맞추고 마음을 부딪쳐 본적이 까마득하다. 뭐랄까? 나에게 바다를 대면한다는 것은 나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을 보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나에게 강은 나를 위로하고 침묵하게 한다면 바다는 나에게 자꾸 질문을 한다. 그래서 혼자 보는 바다가 나는 편하지가 않다. 게다가 여름바다란 나에게 여러 가지 이유로 엄청한 고문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일까? 오늘 문득 나는 여름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것도 혼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익숙하고 헐렁한 바람 잘 통하는 원피스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나는 여름 바다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한여름의 태양으로 태어난 나에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 두려운 나에게 바다가 던지는 질문들을 온몸으로 답하고 싶었다. 딱히 답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 답이라는 것이 결국 죽기 전에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용기를 준 것인지도 모른다.


올여름엔 혼자 바다를 가자. 뜨거운 태양을 두려워 말자. 허여 멀 건한 내 피부가 햇빛에 그을려도 두려워 말고 쏟아지는 땀에 조금씩 지쳐가도 저 끝까지 천천히 또 천천히 걸어가 보자. 여름의 에너지 앞에 그렇게 당당히 맞서 보자. 쓰러지지도 약해지지도 숨지도 말고.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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