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와의 초밥
혼자 사는 것이 나보다 더 익숙한 한 선배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명절과 생일… 그 날만 함께 보낼 사람이 있다면 자신은 남은 평생 외로움의 노예가 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나의 경우는 아마도 생일과 크리스마스인 것 같다. 젊은 시절엔 그저 친구들과 먹고 마시느라 바빴던 의미 없는 날들이, 마흔을 넘기니 그냥 보내기에 아까운 생각마저 들었다. 집 밖을 나가는 것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점점 귀찮아지는 나였지만, 왠지 이 날들만은 억지로라도 누군가를 만나 다음 해 이 날들이 다 갈 올 즈음에 추억하고 싶은 일 하나쯤은 만들고 싶어 졌다.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두고 친한 후배를 졸랐다. 도쿄 타워의 크리스마스 일루미네이션이 미치도록 보고 싶다고. 혼자서는 죽어도 싫으니 꼭 같이 가달라고. 철없는 아이처럼 징징대며 조르는 나를 위해 그녀는 남은 연차를 모두 모았고 드디어 늦은 저녁 도쿄행 비행기를 나와 함께 탔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도쿄는 우리처럼 들떠 있었고 도심 속 곳곳의 일루미네이션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12월의 밤바람이 제법 찼지만 나는 그녀와 팔짱을 끼고 한껏 신이 나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도쿄의 화려한 불빛들이 마치 그녀와 나의 크리스마스를 위해 준비된 것 같았다. 봄날처럼 포근하고 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마지막 밤에는, 도쿄 타워의 불이 꺼질 때까지 주변을 맴돌며 우리들만의 소소한 추억거리를 부지런히 주워 담았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저녁 비행기라는 안도감과 반나절 이상남은 보너스 같은 시간을 정신없이 즐기다, 어느덧 출발시간을 30분 남기고 공황에 도착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것도 도쿄에서 4년의 유학생활을 하고 수차례 서울을 오고 갔던 내가 말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비행기라는 걸 놓치고 내일 출근해야 하는 그녀를 위해 정신없이 공황을 누비며 가까스로 다음날의 첫 비행기 티켓을 샀다. 그리고 오늘 묵을 공황 근처의 호텔을 예약하고 껴입은 옷들 덕분에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나는 겨우 한숨을 돌렸다.
저쪽에서 그녀가 다급히 회사의 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이 돌발 상황을 설명했다. 미안한 마음에 나는 그런 그녀를 똑바로 처다 볼 수가 없었다. 넋이 나간 얼굴로 바닥에 쪼그려 앉은 나에게 이 천사 같은 여인은 오히려 내 걱정을 하며 나를 토닥거렸다. 그리고 그녀는 하네다 공황에는 맛집이 넘친다며 도쿄에서 마지막 만찬을 즐겨 보자며 내 손을 잡았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공황 안의 초밥 집은 사람들로 붐비었다. 차례를 기다려 공항이 내려다 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차가운 물 한잔을 급하게 비우고 초밥과 작은 병의 차가운 청주를 주문했다. 어느덧 우리 앞에 윤기가 도는 먹음직스러운 초밥 접시가 놓였다. “아, 배고프다. 진짜 맛있겠다!”그녀가 두 손을 아이처럼 꼭 모으며 해맑게 외쳤다. 그리고 초밥 하나를 입 속으로 야무지게 넣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나를 보며 찡긋 웃었다.
내가 묵묵히 차가운 청주 한잔을 따라 마시자 그녀가 내 입 속으로 초밥 하나를 넣어 주며 말했다. “언니, 오늘은 크리스마스잖아. 그냥 웃자. 스마일~”나는 행복한 미소와 함께 초밥을 씹었다. 사르르 눈 녹듯 녹아내린 크리스마스 날의 초밥 – 천사 같은 그녀와 함께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