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불구이 고기밥
누군가 그랬다. 살다 보면 누구나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강한 독침을 맞게 된다고. 그 순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에게 독침을 쏜 주인공을 찾는 게 아니라 내 몸속에 번져가고 있는 독부터 빼내는 일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나는 결국 죽고 만다고.
나는 그때 그것을 알지 못했다. 대단한 무엇을 욕심 낸 것도 아니고 단지 내가 맡은 일 앞에 타협하거나 비굴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고 나는 굳게 믿었다. 그런 나를 불편해하는 누군가가 어느새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고 드디어 나는 그들 중의 한 명이 혹은 여려 명이 쏜 독침을 맞고 허덕이다가 풀썩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쓰러지면서도 나는 생각했다. 도대체 누가 나에게 이런 짓을 했을까? 내 몸에 번지고 있는 독을 뺄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확실하지도 않은 그 누군가에 대한 분노를 쌓으며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더 독해지지 않으면 더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리고 더 큰 성과를 내야 한다는 엄청난 마음의 부담을 스스로 떠안으며 내 몸속에 퍼져있는 독을 더 강한 독으로 해독하려 했다.
나는‘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아주 오만하고 건방진 이유로 사람들과 벽을 쌓고 소위 말이 통하는 무리들과 어울려 다니며 주위의 따가운 시선 따위는 그저 질투 어린 관심이라고 치부했다. 나에게 주어진 기회들이 매번 풀기 어려운 시험문제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기필코 혼자서 답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답답하고 불안한 내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책을 읽었다. 모두가 점심이나 저녁을 먹으러 간 동안 사무실에 혼자 남아 책을 보는 날이 많아졌다. 오후에 줄줄이 잡힌 외근을 서둘러 끝내고 오늘은 일찍 퇴근하라는 팀장님의 전화에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내 팔짱을 끼며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는 후배의 제안을 뿌리치고 나는 퇴근시간 전의 한산한 전철에 몸을 실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맑고 청명한 날씨 탓에 전철에서 내려다보는 한강이 더욱 또렷하고 깊어 보였다. 빨려 들 것처럼 강을 빤히 내려다보다 나는 문뜩 결심을 했다. 오늘은 천천히 혼자 저녁을 먹으며 더 이상 힘들게 버티지 않기 위한 나만의 해결책을 반드시 찾아내겠다고.
신입사원 시절부터 자주 가던 태국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 문을 열자 양 볼에 알사탕을 문 듯한 후덕한 인상의 주인아저씨가 나를 알아보며 반갑게 웃었다. 나는 숯불구이 고기밥을 주문했다.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프라이팬이 들썩이는 뒷모습이 잠시 내 눈 앞에 펼쳐진 후, 은은한 숯불 향이 배인 맛깔스러운 고기가 소담하게 담긴 접시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고기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피시 소스에 살짝 담근 후 입 속에 넣고 차근차근 씹으며 나에게 묻었다.‘너에게 일이란 무엇이냐? 오로지 먼저 정답을 찾아내는 게임에 불과한 건가… ’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혼자가 아니라 함께 일 때 더 신나고 완벽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아닐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꿀꺽하고 고기를 삼켰다.
드디어 내 몸속의 독을 빼낸 그 시간에 함께 한 숯불구이 고기밥 – 차분차분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