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집으로 온 내게 엄마는 세탁소 비닐에 쌓인 자신의 옷을 건네며 말했다. 작년에 사서 딱 한 번밖에 안 입은 옷인데 너에게 더 잘 어울릴 것 같단다. 나는 슬쩍 웃음이 났다. 분명 그때는 마음에 들었으나 지금은 별로인 그 옷을 내게 떠넘기고, 엄마는 새 옷을 노리고 있는 게 분명했으니까. 나이가 들면 딸은 이렇게 엄마의 친구가 된다.
신기하게도 나는 유년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다. 심지어 초등학교 3학년 이전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다 엄마가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꺼내면, 나는 “내가 그랬다고?” 하며 시큰둥해졌다. 주변의 누군가가 서너 살 때의 기억을 정확히 떠올리는 모습을 보면 더욱 갸우뚱해졌다. 그 까마득한 꼬마 시절이 정말 기억나는 걸까? 나는 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걸까? 혹시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기억하고 싶은 그 무엇이 부재한 건 아닐까? 사 남매 중 셋째인 나는 장녀도 장남도 막내도 아니었으니, 외로워도 슬퍼도 혼자서도 꿋꿋하고 씩씩했을 거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엄마와의 거리는 더욱 멀어졌다. 마음속에서는 늘 그립고 보고 싶은 엄마였지만, 막상 만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근차근 홅으며 잔소리를 시작하는 탓에 금세 피곤해졌다. 직장을 다니면서 엄마의 잔소리는 줄었지만 갑자기 집으로 와 온 집을 들쑤셔 놓으며 청소를 하는 것도, 오랜만에 만난 딸이 사주는 점심을 조미료 운운하며 깨작거리다가 숟가락을 놓는 모습도 참아내기 어려웠다.
꼭 필요한 말만 하던 엄마와 내가 친구가 된 것은 도쿄 유학을 떠나면서였다. 짐을 부치거나 반찬 등을 조달받기 위해 나는 다시 엄마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 나이에 그런 번거로움과 걱정을 끼치는 게 죄스러웠다. 그러니 최소한 전화라도 자주 걸어서 엄마를 안심시켜야 했다. 5분도 채 안 되어 끝나던 대화가 30분을 넘기고, 어쩔 때는 전화기가 뜨거워질 만큼 통화를 길게 이어갔다. 일방적으로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 나는 처음으로 엄마의 외로움을 느끼게 됐다. 엄마는 그동안 참았던 엄마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속 시원히 털어놓고 싶었던 거였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자식들과 남편을 위해 다 써버린 엄마의 지난날, 그리고 해마다 죽음이 가까워지는 걸 느끼는 엄마의 지금. 그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가 필요했던 거였다.
나는 가끔씩 백화점이나 한 바퀴 돌고 오자며 내 팔짱을 끼는 엄마를 보며 생각한다. 엄마는 외로움이 밀려오는 시간마다 이렇게 누군가를 찾듯이 백화점을 돌았겠구나. 딱히 뭘 사고 싶은 것은 없지만 공허해지는 마음을 어떻게든 위로받고 채우고 싶었겠구나. 문득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 제목이 이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엄마의 친구가 되자’는 말처럼 느껴졌다.
#Tip
엄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라보자. 잔소리와 걱정의 소리보다 훨씬 듣기 편하고 재미있지 않을까? 그리고 듣다 보면 알게 된다. 엄마와 내가 닮은 이유를.
<아네고 에미 >
PS:라디오 프로그램 [아름다운 아침 김창완입니다 ]에서 제 책의 한 꼭지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촉촉한 비가 오는 아침이라 더 마음이 뭉클해졌습니다. 누군가 제 책을 읽어준다는 기분이 이런 거였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