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잊어버려.” 회사를 떠나는 내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그래. 다 잊고 새로 시작할 거야.” 회사를 떠나면서 내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잊어야 했던 걸까?
솔직히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퇴사는 없다. 마지막 짐을 정리하던 그날까지 한 회도 놓칠 수 없는 미니 시리즈처럼 스릴 넘치게 전개되었던 내 이야기들은, 나를 꽤 오랫동안 아프게 할 것이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불변의 처방에 따라 실현될 즈음이면, 가슴 안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깜빡 잊어버린 송곳처럼 어느 날 불쑥 튀어나와 나를 또 찌를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둔감한 척해도 심장을 조이며 토해내는 딸꾹질처럼 숨이 막히고, 새하얀 불면의 밤을 보내게 될 것이다. 생각보다 나는 나약하고, 생각보다 나는 독하지 못하다 걸 이런 순간이 되어서야 확인한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비밀을 간직한다. 그것은 내가 못다 한 이야기가 아니라 영원히 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나는 잊기보다 기억하기로 했다. 하나하나 더 또렷하게 기억해내며 그 속에서 허둥거리는 나를 위해 ‘멈춤’ 버튼을 누르고, 흔들리는 내 어깨를 차분하게 감싸 안으며 나를 위로하고 꼭 안아줄 것이다. 그리고 내게 말해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렇게 된 것은 내 탓이 아니라고. 결론 없는 누군가를 향한 원망도, 되돌릴 수 없는 과거 속의 넋두리 같은 후회도, 이제 더 이상 내 몫이 아니라고.
그러므로 내가 애써 잊어버려야 할 것은 없다. 조금은 불편하고 뒤끝이 씁쓸한 기억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기억 속의 내가 아픔의 강 저편에 있는 치유의 길로 들어서도록 여유롭게 기다려주면 그만이다. 그리고 어떤 것을 강요하지도, 어떤 기대도 하지 않은 채, 그냥 그대로 나를 방치해두기로 했다. 때때로 그 시간 속에서 할 일 없이 뒹구는 내가 답답하고 한심해 보여도 묵묵히 참고 봐주기로 했다. 달라진 일상과 달라진 내 모습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새로운 무언가를 계획하고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 과거의 내게도, 현재의 내게도 서로를 충분히 바라볼 시간이 필요했다.
# tip
내게 보내는 과거 일기를 써본다. 솔직하게 털어놓은 그때의 내 이야기를 내게 읽어준다. 그리고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네’ 하고 씩씩하게 외치고 일기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