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사원 시절, 야근은 몇 달째 끈질기게 이어졌고 누군가가 훼방이라도 놓는 듯 모든 일이 이상하게 꼬였다. 슬슬 머릿속이 쪼그라들며 진이 빠지고 인간의 한계를 실험하는 극한 단계에 이를 즈음에 광고주로부터 이만하면 되었다는 허락이 떨어지곤 했다.
입사 후 처음으로 새벽인 아닌 한밤중에 퇴근을 한 나는, 막 문을 닫으려는 동네 슈퍼에서 맥주 한 캔을 샀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베란다로 나가 축축한 머리로 새벽바람을 맞으며, 차가운 맥주 한 모금을 넘길 생각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부엌과 침실이 전부인 깜깜한 집 안에서 익숙한 내 향수 냄새가 났다. 집에 왔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손으로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켰다. 그런데 여전히 깜깜했다. 정전인가? 그러나 베란다 창문 너머로 띄엄띄엄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스위치를 몇 번이나 껐다 켰다 반복하다가 결국 화장실 불을 켜 집 안을 겨우 밝힌 뒤 이 사태의 원인을 파악했다.
거실 형광등이 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이사 온 이후로 한 번도 형광등을 갈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한 시가 다 되어가고, 이 시간에 형광등을 살 수도 없었다. 산다고 한들, 한 번도 형광등이라는 걸 갈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 아래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맥주 캔을 땄다. 이런 상황이 순간 조금 서글펐다. 맥주 한 모금을 크게 삼키고 나자, 일한답시고 다른 일상에는 정신 줄을 놓고 사는 내가 또 한심해졌다.
우습게도 나는 그 후로도 일주일을 더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살았다. 바로 다음날부터 야근 제2라운드가 시작되었고, 퇴근길에 산 양초를 켜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파트 수위 아저씨에게 여쭤보니, 근처 상가의 전파상 기사님이 원하면 직접 집에 오셔서 형광등을 갈아준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저녁 아홉 시면 그 가게가 문을 닫는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었다.
지루했던 마라톤 회의가 끝나고 회의실 문을 나서는 팀장님을 멈춰 세우고, 나는 용기 내어 말했다. 오늘은 좀 일찍 퇴근했으면 좋겠다고. 그는 의외라는 듯 눈을 깜빡이며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형광등을 갈아야 하는데 아홉 시가 넘으면 가게가 문을 닫아서요. 제가 해본 적도 없고, 집이 깜깜하니까 무섭기도 하고….” 팀장님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팀원들을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야, 오늘 우리 신입 사원 무조건 일찍 보내줘라.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알았지?”
농담 같은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살아보니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많았다. 특히 나처럼 혼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스스로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줄줄이 생겨난다. 수명을 다한 형광등을 갈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말썽을 부리는 가전제품이나 노트북도 고쳐야 하고, 갑자기 끊기는 인터넷의 원인도 찾아야 하고, 허술해진 테이블과 의자의 나사들도 쪼여야 하고, 조각 난 가구들도 끙끙대며 조립해야 하고, 카펫이나 이불 같은 덩치 큰 세탁물도 빨아야 하고… 누군가 대신해주길 바라지만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 그런 일들은 차고 넘친다. 이왕이면 기꺼이 즐겁게 해내는 법을 차근차근 터득하기로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해냈을 때의 성취감도 짜릿하다.
#tip
기계치들한테는 한밤중에 노트북이나 인터넷이 말썽일 때가 가장 골치 아프다. 24시간 서비스 센터에 전화해 무조건 잘 모르니 찬찬히 친절하게 가르쳐달라고 조른다. 그들은 대부분 친절하고 상냥하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