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고 생활하다 보면 요리는 나만의 재미난 오락이 된다. 처음엔 라면을 끓이고 즉석 밥을 데우는 게 전부였는데 점점 간단한 반찬거리를 만들어보고 싶어 졌다.
그동안 나를 먹이기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몇 시간 동안 부산을 떨어 완성한 음식을 먹어줄 사람이 고작 나뿐이라는 게 시시했다. 내게 요리를 한다는 행위는 누군가를 먹이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혼자 밥을 먹기 위해, 네모 반듯한 식탁 위에 테이블보를 깔고 구색을 맞춘 그릇들로 차려내는 근사한 한 끼는 순전히 오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넙적한 용기의 즉석 밥과 도시락 크기의 반찬 통들이 그대로 식탁에 오르고, 국물로 얼룩진 냄비가 국그릇이 되는 나의 밥상에 짜증이 났다. 한마디로 초라함을 넘어 궁색해 보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누구도 아닌 나를 먹이는 일에 이렇게 홀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좋은 것을 제대로 먹여주자고 결심했다. 요리를 해본 적도, 잘할 자신도 없었지만 일단 수년간 식품회사 광고를 담당해온 이론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만한 요리책 하나를 구입했다.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인사들의 요리책들이 차고 넘쳤지만, 나는 일본에서 사원 식당으로 유명한 《타니타 직원식당》책을 골랐다. 재료도 간단하고 특별한 조미료가 필요 없고 무엇보다 건강식 위주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먼저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확인하고 책을 뒤적여 바로 요리할 수 있는 오늘의 메뉴를 정했다. 그리고 천천히 재료를 손질하고 아끼던 냄비를 꺼내 레시피를 따라 차근차근 요리를 했다. (그릇과 냄비 욕심이 많은 절친을 따라 하나둘씩 사 모은 냄비와 그릇들이 어느새 싱크대 위의 커다란 선반을 꽉 채우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처음 도전한 아스파라거스와 새송이버섯볶음은 참기름 덕분인지 윤기를 내며 맛깔스러워 보였고, 은은한 하늘색 사기그릇에 담긴 시금치 된장국의 자태는 단아했다. 쓰지 않고 서랍 속에 넣어 두었기만 했던 테이블보를 꺼내 식탁 위에 깔고, 손잡이에 나뭇잎 모양이 새겨진 은빛 수저를 가지런히 놓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로지 나를 먹이기 위한 근사한 밥상을 차렸다. 내게 비싼 옷을 사준 것보다 더 흐뭇하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혼자 먹는 밥에는 추억이 없다고 생각했다. 밥이라는 것은 달그락달그락 서로의 젓가락이 그릇에 부딪치는 소리를 내어가며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까닭에 내게 혼자 먹는 밥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달랐다. 요리하는 과정은 즐거웠고, 먹는 동안 내내 흐뭇했다. 그렇게 나만의 추억이 되었다. 나를 먹이는 일, 생각보다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
# tip
따라 하기 쉬운 요리책 하나쯤은 마련해둔다. 책을 보며 기분에 따라 그 날의 메뉴를 정하고 요리를 만든다. 저녁때라면 음악의 볼륨을 높이고 와인이나 맥주를 한잔하면서 요리를 해도 좋다. 은근 신나고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