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둑한 미국식 인심

브루클린 햄버거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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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온 지 어느덧 이주가 흘렀다. 그리고 난 놀랍게도 이틀에 한 번은 햄버거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햄버거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나에게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는 미식의 도시 뉴욕에서 햄버거로 소중한 한 끼를 때우는 건 엄청난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간단했다. 낯선 곳에서 혼자 밤을 보내고 그다음 날 아침이면 괜스레 공허해진 나의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주는 포근하고 따뜻한 맛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나는 나와 다를 게 없는 평범한 미국인들의 소울 푸드 인 햄버거 맛에 마음의 눈을 뜬 걸까?


미국 유학시절, 버거킹이나 맥도널드에 가면 늘 뚱뚱한 과체중의 흑인들로 넘쳐났다. 미국 음식에 신물이 났던 나는 아침에 라면을 끓여 흰밥까지 배가 빵빵해지도록 말아먹고 하루 종일 소다 한 병으로 버텼다. 그러다 슬슬 참을 수 없을 만큼 너무 배가 고파지면 감자튀김을 사러 학교 근처의 패스트푸드점으로 갔다. 양손 가득 몇 겹의 패티가 쌓인 햄버거를 들고 단숨에 해치우는 주변의 거대한 풍선 같은 그들을 보면서, 저 살찌는 폭탄 덩어리인 햄버거를 먹으면 나도 저들처럼 저렇게 뚱뚱해질 것 같은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어쩌다 햄버거를 먹으면 하루 종일 소화가 안됐다. 그 후로 햄버거는 영영 나와 아무 상관없는 너무나 먼 음식이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10여 년이 지난 후, 나는 뉴욕의 브루클린 어느 곡목에서 우연히 발견한 햄버거 가게에서 두꺼운 패티 위에 각종 야채를 올리고 소스를 듬뿍듬뿍 뿌리고,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도 여전히 뚱뚱한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뉴욕에서 내가 한 달간 머문 곳은 브루클린 하이츠의 낡은 스튜디오였다. 뉴욕의 야경 속에 반듯이 등장하는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자마자 펼쳐지는 아담한 주택인 브루클린 하이츠는, 근처에 낡은 창고를 개조해 만든 건축과 디자인 사무실이 많았고, 최근에 뉴욕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진 ‘핫 플레이스’들과도 멀지 않았다. 스튜디오 근처에는 여행잡지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맛있는 브런치 카페도 있고, 심지어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레스토랑도 여러 곳 있었지만, 나는 늦잠을 자고 나온 게으른 하루의 시작을 위해 또 햄버거를 샀다. 그리고 쨍한 오후의 햇살이 눈부신 브루클린 하이츠 공원의 벤치에 앉아 맨해튼의 빌딩 숲을 바라보며 소다가 아닌 커피와 함께 햄버거를 먹었다. 4월 중순인데도 뉴욕의 바람은 아직도 차고 매서웠다. 저 멀리 맨해튼으로 가는 페리를 표정 없이 물끄러미 보며,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곳에 머문 사람처럼 한쪽 팔을 벤치 등받이에 슬쩍 걸치고 능청스럽게 햄버거를 우물거렸다. 그러다가 공원을 거니는 팔짱을 낀 연인들과 피크닉을 나온 가족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에, 새삼 혼자라는 사실을 실감하며 - 혼자가 되고 싶어 떠난 여행에 혼자 임에 소스라치며- 고독함과 외로움 사이에서 혼돈스러워했다. 나는 감탄을 쏟아내야 하는 풍경들을 앞에 두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나는‘왜 이 아름다운 것을 혼자 보는 걸까’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 대답을 찾기 위해 ‘함께 오고 싶은 누군가’를 애써 떠올려 보지만, 딱히 그럴만한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나의 마음은 슬쩍 외로움 쪽으로 기울었다.


어느덧 맨해튼으로 가는 페리의 출발시간이 가까워졌고 나는 남은 햄버거를 입안에 몽땅 밀어 넣고 벤치에서 씩씩하게 몸을 일으켰다. 문뜩 혼자 임에 허전해지는 순간, 두둑한 미국식 인심으로 마음을 든든하게 채워준 햄버거 – 외로워 말고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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