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날이 단골 메뉴

냉동 삼겹살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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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오전에 있을 회의 준비로 정신없는 나에게 몇 달 전 우리 팀으로 옮겨온 그녀가 다가왔다.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팀장님, 우리 오늘은 삼겹살 좀 먹으면 안돼요?”그러고 보니 퇴근시간이 지난 지 한참이었다. 나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 팀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우리 오랜만에 삼겹살 회식이나 할까?”팀원들은 모두 기다린 것처럼 방긋방긋 웃으며 가방을 챙겼다.


삼겹살… 나에게는 신입부터 지겹게 억지로 먹어온 단골 회식 메뉴였다. 입사 후 첫 회식 날 나는 시꺼먼 무쇠 판 위에 올려진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네모난 냉동 삼겹살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익기 바쁘게 누군가의 젓가락에 의해 사라졌고 다들 크게 쌈을 사서 맛있게들 먹었다. 나는 불 판의 가장자리에 올려놓은 김치를 뒤적이며 된장찌개를 떠먹었다. 그런 나를 보며 팀원 중의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 신입은 귀하게 컸나 봐? 삼겹살 같은 건 안 먹고 소고기만 먹었나? ”솔직히… 그랬다. 귀하게 큰 것의 기준이 소고기라면 나는 귀하게 큰 거였다.

나는 고기보다 생선을 더 좋아했고 우리 집의 식탁에 삼겹살이 올라온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러나 그 당시 그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해진 나는 삼겹살 한 점을 얼른 집어 참기름 소금에 흥건하게 찍어 상추에 싸 먹었다. 그 후로 회식 때마다 나는 삼겹살 굽기를 자처했다. 팀의 막내이기에 굽는 당번이 되는 게 자연스럽기도 했지만 열심히 고기를 뒤집으면서 가끔 먹는 척만 하면, 그 누군가의 시니컬한 잔소리는 다시 듣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그 덕분에 난 회식이 많을수록 살이 빠졌다. 자연스럽게 저녁을 굶게 되니까.


세월이 흘러 내가 팀장이 된 후에 우리 팀의 회식 메뉴로 삼겹살이 선택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다른 팀에 비해 유난히 팀원들이 어리기도 했고, 남자든 여자든 전부 다이어트에 민감했고, 회식의 횟수를 줄이는 대신에 비싸고 맛있는 걸 먹자는 나의 의견에 기꺼이 동참했다. 우리 팀은 인기 있는 초밥 집이나 횟집에서 제철 생선을 주로 먹었다. 물론, 말하지는 않았지만 고기를 즐기지 않는 나의 취향과 입맛을 배려한 팀원들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오늘 새롭게 합류한 그녀가 불쑥 회식 메뉴로 삼겹살을 먹자고 한 거였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팀원들과 함께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언제부터인가 냉동삼겹살이 사라지고 도톰한 생고기인 오겹살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익어가고 팀의 막내가 그 옛날의 나처럼 열심히 고기를 뒤집고 있었다. 나는 그의 손에서 집게를 뺏고 대신 고기를 구웠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빼앗긴 듯 당황하는 그에게 고기는 내가 잘 굽는다고 말하며 노릿노릿하게 잘 익은 고기 한 토막을 그의 접시에 올려주었다. 모두 오랜만인지 삼겹살을 맛있게도 먹었다. 가만히 그들을 보다 그 옛날의 내가 생각났다. 회식 때마다 맨 끝자리에 앉아 고기를 구우며 김치와 상추만 먹어대는 탓에 나는 소주 몇 잔이면 금방 취했다. 그런 나를 위해 자상했던 선배들은 기름이 적은 삼겹살만 골라 내 접시 위에 슬쩍 올려놓곤 했다. 그런 선배들의 모습에서 나는 이 사회라는 곳의 따뜻함을 처음 느꼈는지도 몰랐다.


나는 부지런히 고기를 구워 팀원들의 접시에 올려주었고 삼겹살을 먹자고 했던 그녀가 앙증 맛게 싼 상추쌈을 내 입으로 넣어 주었다. 나는 상추쌈을 씹으며 삼겹살을 챙겨주던 선배들이 떠올랐다. 살가운 눈웃음과 함께 내 접시 위에 그들이 올려주던 삼겹살 - 후배를 위한 따뜻한 마음이라는 걸 깨달았다면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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