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 가득

마카로니 샐러드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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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타고 민들레 홀씨처럼 파란 하늘 속으로 날아가고픈 10월의 어느 가을날… 오늘 하루만이라도 잠깐 스쳐 지나가는 이 가을에 푹 빠지고 싶은 감수성 풍만한 지인들과 나는 춘천행 기차를 탔다. 20년 전 그때처럼 기차간에 나란히 앉아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먹는 것도 색다른 추억이 될 거라며 누군가 바람을 잡았고, 나는 주책스럽게 호들갑을 떨며 제일 신나 했다.


우리는 춘천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파란 하늘이 살포시 내려앉은 수면 위로 반짝이는 햇살과 노란 은행 비가 내리는 호수공원은 가을의 운치로 충만했다. 호수를 끼고 쭉 펼쳐진 산책길을 쉬엄쉬엄 걸어가는 우리 옆으로 자전거를 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그때 우리 중 누군가가‘자전거를 빌려 호수 끝까지 달려보면 어때?’하고 말했다. 걷는 것이 슬슬 지겨워지는 타이밍에 절묘한 생각이라며 나를 제외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아무 말 없이 자꾸 시선을 피하는 나를 보며 ‘자전거를 못 타는 거야? 그럼 우리도 다음에 타자.’하고 돌아서는 지인들에게 나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자전거 대여소를 향해 앞장을 섰다. 그리고 모두에게 자전거 한대 씩을 안겼다. 하나둘 자전거가 출발하고, 나는 그 뒤를 아무렇지도 않은 척 따라가면서, 처음으로 지금까지 자전거도 못 배운 한심한 나에게 화가 났다. 솔직한 심정은 자전거에 몸을 싣고 내 앞을 가볍게 가로질러 가는 그들이 한없이 부러웠고, 나 또한 그들처럼 가을바람을 맞으며 호숫가를 달리고 싶었다. 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 처량하게 홀로 앉아 지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결심했다. 꼭 자전거를 배우고 말리라. 그리고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다시 춘천으로 와 이 길을 반듯이 자전거로 달려 주리라.


그 후 한주가 흘렀고, 나는 폭풍 검색으로 찾아낸 자전거 배우기 동영상을 여러 번 돌려 본 후 서울 숲으로 씩씩하게 향했다. 서울 숲에 도착한 나는 자전거 대여소를 물어 물어 찾아내고 두 시간 동안 자전거를 빌렸다. 대여소 주인아저씨에게 자전거는 처음이라고 털어놓고 타는 법을 묻자, 아저씨는 한 손으로 자전거 바퀴를 돌리며 무심하게 내뱉었다. “자전거… 그거 금세 배워요. 왜 스키 탈 때처럼 한 발 한 발씩 미끄러지듯이 걸어가다 보면 중심이 잡혀요. 그때부터 페달을 천천히 밟으면 끝이지 뭐…”


아저씨의 말에 용기를 낸 나는 자전거를 조심스럽게 끌고 근처의 텅 빈 테니스장으로 향했다. 수없이 본 영상과 아저씨의 가르침대로 중심을 잡으려 애썼지만 몇 걸음을 가지도 못하고 나의 자전거는 맥없이 자꾸자꾸 꼬꾸라졌다. 운동신경이 둔한 거야 예전부터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 자전거 타기에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이마에 주렁주렁 굵은 땀방울이 맺히고 어느새 힘이 빠진 손과 발은 후들후들 떨렸고 자전거의 무게는 천근만근이었다. 나는 30분을 넘기지 못하고 벤치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고, 맥없이 내 손을 벗어난 자전거는 벤치 앞에 널브러져 장렬히 전사해 있었다.


그 순간, 햇빛에 그을린 까만 얼굴의 할아버지가, 그야말로 여기저기 녹이 쓴 구닥다리 자전거에 집채만 한 배달 통을 싣고, 목이 늘어난 누런 티셔츠를 휘날리며 내 옆을 지나갔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한 손으로 자전거 핸들을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들고 싱글벙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낙엽이 마치 길을 터 주듯 양쪽으로 휘날리는 숲길 속으로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사라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가물가물 해질 때까지 멍하니 처다 봤다.‘저 할아버지는 지금 이 순간 내가 간절히 하고 싶은 걸 저렇게 쉽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불현듯 오기가 난 나는, 다시 이를 악물고 자전거를 낑낑거리며 일으켜 세우고 몇 번을 더 도전했지만 역시 무리였다. 한 시간을 겨우 채우고 자전거를 반납하러 나타난 나를 보며 대여소의 주인아저씨는 얄밉게 웃으며 말했다. “자전거가 쉬워 보여도 어떤 사람들한테는 어려울 수도 있고. 낼 시간 나면 한번 더와요. 내가 비법을 가르쳐 줄게요.”이미 어깨가 축 늘어진 나는‘비법이 있으면 진작에 가르쳐 줬으면 좋았잖아요.’라는 원망을 소리 없이 토하며 힘없이 돌아섰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근처의 작은 스낵바에 들어 가 수제 맥주 한잔과 마카로니 샐러드를 주문했다. 나는 고소한 마요네즈를 듬뿍 넣고 버무린 마카로니들을 입안 가득 터지도록 넣고, 사정없이 꾹꾹 씹어 넘기며 이 엄청난 속 터짐을 깡그리 잊고 싶었다. 오늘의 실패를 위로해 줄 한 입 가득 마카로니 샐러드 - 다음 도전을 기약하며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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