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은 살아있다

골뱅이 샐러드

by anego emi
10.골뱅이셀러드.jpg

그냥 넘어가기도 꼬박꼬박 챙기기도 무색한 날, 바로 마흔을 넘긴 나이가 가볍지 않은 언니들의 생일날이다. 생일날이 다가오는 일주일 전부터 언제 가입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각종 사이트에서 보낸 축하 메일과 할인쿠폰들이 차곡차곡 메일 보관함에 쌓인다. 아침마다 이 메일들을 하나씩 휴지통 속으로 클릭하면서 본능적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생일날을 나도 모르게 카운트다운하게 된다. 그리고 디데이 날 아침에 노트북을 켜자마자 화면 위로 뜨는 ‘당신의 마흔다섯 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라는 페이스북의 메시지를 읽는 순간, 세상 모든 지인들에게 적지 않은 내 나이가 적나라하게 폭로되는 낯 뜨거운 느낌에 화들짝 놀란다. 아울러, 내가 또 한 살 나이가 든 걸 누군가 이 메시지를‘클릭’할 때마다 인증받는 듯한 서글픈 기분에 빠져 들고, 충동적으로 비슷한 처지의 동네 여인들과 생일을 핑계 삼은 번개 모임을 저지르고 만다.


간판도 없고 아는 사람만 갈 수 있는 골목 깊숙한 곳에 숨어있는 후배의 작은 레스토랑에 모두 모였다. 20대부터 시작된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가는 이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 인 후배는, 최근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깊은 산속 자연인에 버금가는 칩거 생활 중인 ‘고독한’ 누님의 생일을 위해, 레스토랑 한쪽 벽에‘해피 벌쓰 데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알록달록한 장식을 만국기처럼 걸어 놓았고, 한가운데 커다란 형광 색 별이 달린 종이 왕관까지 준비해 놓았다. 동네 여인들은 그의 달달한 애교가 넘치는 센스에‘어머나’라는 감탄사를 연이어 쏟아내고 식당 안의 큼직한 원 테이블에 호들갑을 떨며 앉았다.


오늘의 메인 메뉴는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후배만의 레시피로 탄생한 새콤하면서 달콤한 맛이 일품인 골뱅이 샐러드였다. 생 골뱅이를 살짝 데쳐 아삭아삭한 유기농 야채와 함께 발사믹 식초, 참기름이 들어간 간장 소스로 조물조물 버무리고 톡톡 터지는 고소한 현미 알갱이 튀밥으로 장식을 했다. 담백한 골뱅이 샐러드가 식탁 위에 등장 하자 그녀들의 생일 선물인 귀한 와인들이 줄줄이 오픈되었다. 채워지는 와인 잔과 함께 슬슬 취기가 오른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이 자리가 아니면 꺼내기 쑥스러운 젊은 날의 추억들을 하나씩 소환하기 시작했다. 쉴 틈 없이 릴레이처럼 이어지는 누군가의 추억들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는 큰 소리로 웃고 때로는 아이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다 ‘앞으로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까’하는 나이 든 언니들의 뻔한 넋두리가 누군가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그 순간, 아주 잠깐 동안 숨을 고르는 듯한 침묵이 흘렀다. 반쯤 남은 와인 잔을 만지작거리던 내가 오늘의 주인공답게 잔을 들고 건배를 크게 외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의 유쾌한 수다가 다시 이어졌다.

서로를 보듬기에 충분히 따듯했던 고백 같은 언니들의 수다가 넘치던 생일날의 골뱅이 샐러드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우기며 조금 더 맛있게 먹을 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자카야 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