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옷인지 일상복인지 분간이 안 되는 헐렁한 원피스를 입고 멍한 얼굴로 책상 앞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40대의 나는, 갑자기 주위가 까맣게 어두워지며 내 앞에 나타난 30대의 나를 물끄러미 본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중인 30대의 나는, 긴장을 했는지 연신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 곱게 화장한 내 얼굴은 차츰차츰 땀으로 얼룩지면서 피곤함이 엿보인다. 그때 어디선가 또각또각 날카로운 구두 소리가 들렸다. 단정한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20대의 내가 걸어 들어와, 복도 끝의 기다란 의자에 앉는다. 인턴 면접을 위해 비장한 표정으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순서를 기다린다. 이름이 호명되어 벌떡 일어서다 그만 무릎에 올려놓은 가방을 떨어뜨린다. 그런 어리숙한 내 모습을 팔짱을 끼고 묵묵히 지켜보던 새침한 10대의 내가 어깨를 들썩이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30대, 20대, 10대의 내가 한심한 듯, 부러운 듯 의미를 알 수 없는 얼굴로 40대가 된 나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모여든다.
이것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낮잠 속에 펼쳐진 꿈 이야기다. 마치 인생의 주마등 같은 이상한 꿈을 꾸게 된 것은, 최근에 슬럼프에 빠진 내가 못마땅해서 일지도 모른다. 꿈속에서 40대의 나는 지난날의 나에게 미안해했다. 아등바등 살아온 너희들의 40대가 ‘이런 나’여서 안타깝다는 얼굴이었다.
젊음도 직장도 없는 40대의 나는 지난날의 나보다 내세울 것이 분명 없었다. 그러나 40대의 나는 말하고 싶었다. ‘나도 네가 이렇게 살 줄은 몰랐어. 우리들은 누구나 예상하지 못했던 삶을 살게 되는 법이니까. 그런데 말이야,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그렇다고 예전보다 더 나아졌다거나 대단히 만족스럽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아. 다만, 가장 다행스러운 사실은, 이제야 비로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하나둘씩 알게 되었다는 거야. 솔직히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좋아하는 일은 달랐을지도 몰라. 대학을 졸업했으니까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혹은 요즘 유행하는 직업이라는 막연한 이유가 단순하게 ‘하고 싶은 일’의 이유가 되어버렸고, 어차피 하게 되었으니까 ‘좋아하는 일’이라고 굳게 믿은 것일지도 몰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구르고 버텨준 너희들 덕분에 지금 내가 이렇게 살 수 있게 되었어. 내 모습이 너희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부족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거라고, 믿고 응원해주지 않을래? 한결 가볍고 자유로워진 내 몸과 마음은 이제야 비로소 진짜 내 모습을 찾고 있는 중이거든.’ 아마도 나의 그녀들은 분명 나를 믿고 응원해줄 게 분명했다.
# tip
10년 뒤의 나는 내게 어떤 말을 할까. 어떤 말을 듣고 싶을까. 지금의 내가 답답해질 때마다 생각해본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