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돈 받는 날

by anego emi



두세 달에 한 번 꼴로 용돈을 받는다. 액수는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지만 나를 먹이고 입히는 데는 그다지 부족함이 없다.


도쿄에서 돌아온 후, 다시 만난 동기들과 후배들은 직함이 달라져 있었다. 내 공백은 그들의 승진으로 채워져 있었고, 심지어 최연소 대표이사도 있었다. 한껏 여유로워진 그들의 말투와 본새는, 내가 돌아갈 곳은 결코 회사가 아니라는 확신을 주었다. 변함없이 살가운 그들은 또 나의 밥벌이부터 걱정하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자리를 알아봐 줬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내 이름으로 된 무언가를 만들어 그걸로 살아보겠다고 선언했다.


출판사에 쓰고 싶은 책의 기획안을 보내고, 그간 그린 그림들을 모아서 블로그에 부지런히 올렸다. 그러나 출판사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고, 블로그는 어느새 그림이 사라진 일기장이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답답한 마음에 각별했던 지인의 회사에 잠시 몸담게 되었다. 매일 출근을 해야 했지만 출근 시간은 자유로웠고, 딱히 일이 없는 날에는 나가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무엇보다 사장의 눈치를 전혀 볼 필요가 없었다. 그가 마련해준 내 방에서 일을 하거나 작업을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타고난 것이 일복뿐인 나는 몇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또 일에 허덕이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을 간신히 채우고 나는 그곳에서 나왔다.


그리고 진정한 프리랜서의 길로 접어들었다. 지금부터 나는 기꺼이 먹이사슬의 가장 낮은 위치가 되어야 했다. 처음에는 먹이 사슬의 꼭대기를 차지한 누군가가 나의 까마득한 후배라는 사실에 당황스러웠다. 이름을 부르는 것이 익숙했던 그들에게 나는 꼬박꼬박 이름 뒤에 직급을 붙이고, 존댓말을 하고, 그들의 반응을 체크하며 설명을 해야 했다. 처지가 180도 바뀌었다. 그러나 나보다 백배는 더 심성이 좋은 그들은 나를 여전히 깍듯하게 선배 대접해줬고, 문 앞까지 나를 배웅하며 감동시켰다


나는 이제 기쁜 마음으로 그들의 을이 되어 그들을 돕고 그 대가로 용돈을 받는다. 책임을 내려놓고 일을 맞이하니 모든 게 달라졌다. 머리와 몸은 유연해지고 해결책을 찾는 범위가 한층 넓어졌다. 프리랜서는 하기 나름이라 자신의 쓸모를 얼마든지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차츰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프리랜서는 베테랑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계별로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했고, 경력이 무겁지 않을수록 팀원처럼 편하게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언제든지 원한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프리랜서가 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어쩌다 받는 두둑한 용돈은, 월급보다 분명 짜릿했다.


# tip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공감하겠지만,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은 대부분 일을 잘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으로 한 번이라도 기억되면 프리랜서의 길은 순탄해진다. 그리고 프리랜서라고 해서 꼭 혼자 일할 필요는 없다. 비슷한 업종끼리 한 곳에 모여서 각자의 일을 하면 의외의 시너지가 생기고, 뜻밖의 인맥과 기회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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