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샌드위치로 늦은 점심을 때울 요량으로 집을 나왔다. 폭신폭신한 에그 샌드위치를 한입 크게 물면서 내 발 밑으로 떨어지는 벚꽃 잎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솜사탕을 가늘게 찢어 놓은 듯한 구름이 덮인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속에서도 봄날의 햇살이 유별났다. 순간 나는 봄날의 만개한 벚꽃을 떠올리며 ‘석촌호수 역 경유’ 팻말이 붙은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이게 얼마만인지.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넘쳐났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어머님들, 팔짱을 낀 연인들, 소방대원처럼 주황색 조끼를 맞춰 입은 중국 관광객들…. 많은 사람들이 호수를 따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아래를 각자의 소음을 내며 사뿐사뿐 걷고 있었다. 나 또한 소녀처럼 들뜬 마음으로 꽃과 호수와 하늘을 번갈아보며 복작대는 봄날의 행렬에 기꺼이 동참했다.
떠밀리듯 한참을 걷던 중, 어딘가에서 우렁찬 북소리가 들렸다. 발걸음을 멈추고 북소리가 새어 나오는 가파른 계단 너머를 빤히 보다가 그곳으로 향했다. 국악 공연을 위한 돔 형태의 공연장이었다. 주말 공연을 위해 리허설 중이었고, 객석은 공연을 관람하는 어르신들로 띄엄띄엄 채워졌다. 20대로 보이는 생기 넘치는 여인들이 발목까지 오는 긴 검정 치마의 허리춤을 동여맨 채 크고 작은 각자의 북들을 신나게 처댔다. 쩌렁쩌렁한 북소리, 절도 있는 몸놀림, 상기된 그들의 얼굴에서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무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그들의 하얀 버선발을 보자,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어쩌면, 지금 갈 길을 잃은 나는, 자신들이 가고 싶은 그 길을 향해서 하얀 버선발을 내딛는 젊은 그들이, 순간 가슴 시리게 부러웠던 건지도 모른다.
꽉 찬 눈물 덕분에 시야가 흐릿해진 내게 누군가가 묻는 듯했다. ‘그대, 길을 잃었는가.’ 잠시 망부석처럼 굳어 있던 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다시 눈을 감고 가라.’ 누군가가 또 담담하게 말했다.
어느새 북소리는 사라지고 그들은 무대를 향해 인사했다. 그 위로 기분 좋은 봄바람을 타고 벚꽃 비가 내렸다. 뜨거운 눈물을 꼭 감은 두 눈에서 속 시원히 쏟아내며, 나는 그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가던 길을 갔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가던 길이 있었다. 봄날의 벚꽃이 나를 오랜만에 기다리던 그 길.
# tip
일 때문에 포기했던 수많은 것들을 떠올려본다. 그것들을 그저 봄날의 산책처럼 편안하게 시작해본다. 그렇게 새 길을 찾을 이정표들을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