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도쿄야?” 송별회 겸 모인 점심 회동에서 내 옆자리에 앉은 선배는 의외라는 듯 물었다. “음… 오므라이스요. 골목에서 나는 오므라이스 냄새를 맡고 싶어서요.” 농담 같은 나의 대답에 선배는 빙긋하고 웃었다. 아마도 그는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뭔 소리야, 확실히 상태가 이상하긴 하구나. 네가….’
내게 도쿄는 전혀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었다. 대리 시절, 광고주와 함께 식품박람회 참관을 위해 도쿄에 간 적이 있었다. 대도시임에 불구하고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것, 길거리에서 뭔가를 나눠주는 노란 머리의 못생긴 청년들, 그리고 어딜 가도 기다려야 하는 긴 줄. 도쿄에 대한 인상은 이런 것들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왜 하필 인생의 마지막 유학이 될지도 모르는 이번 기회를, 도쿄에서 보내기로 결심한 걸까?
당연히 그림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도쿄에는 유명한 디자인 전문학교가 많았고, 무엇보다 유학 생활을 2년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그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그 다음은 우습게도 그 당시에 밤마다 나를 웃고 울게 하는 일본 드라마 <런치의 여왕> 때문이었다. 드라마 주인공이 좁다란 골목에 자리 잡은 아담한 레스토랑에서 맛있게 먹던 오므라이스. 그리고 주인공 나츠미의 명대사. “혼자 무슨 일을 해도 잘 안 풀리고, 지금 당장 전화를 하거나 내일 만날 친구도 없고, 있을 곳도 없어서 외로울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는 항상, 그 가게에서 달콤한 냄새가 났어요. 오므라이스 냄새. 예전에 먹었던 그 오므라이스 냄새… 달콤하고 따뜻하고 행복한 맛. 그래서 살아가자 생각했어요.” 드라마 속 그녀가 마치 지금의 내 처지 같아서 대성통곡을 하며 그 장면을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른다.
나는 그 순간 마음속에 그려보았다. 도쿄에 가면, 골목 어딘가에 그런 레스토랑이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나는 스케치북이 든 가방을 매고 그 앞을 지나고, 가게에서 새어 나오는 은은한 오므라이스 냄새에 발걸음을 멈추고, 성큼성큼 가게 안으로 들어가 런치의 여왕처럼 맛있게 오므라이스를 먹으며 행복해한다. 그것으로 내가 도쿄로 갈 이유가 완벽해졌다.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도쿄로 갔다. 한여름 더위가 최고조에 이른 8월의 도쿄는 찜통에 갇힌 것처럼 숨이 막혔다. 사우나가 따로 없었다. 도착한 그 다음날부터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비가 왔다. 그 다음날도, 그 다다음 날도… 비는 그칠 줄 몰랐다.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보며 몇 번이나 한국에 다시 돌아갈 이유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를 번갈아 가며 떠올렸다. 쉽게 한 결정은 쉽게 후회를 부르는지도 몰랐다. 그 후로 수십 번도 더 후회했지만, 그래도 도쿄는 내게 골목골목 숨겨놓은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오므라이스를 실컷 먹게 해주었다.
그리고 일을 떠나 미아가 된 나에게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원없이 다시 방황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었다. 남은 인생을 위해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굳은 결심을 매순간 하게 했다. 낯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바라보는 청명하고 푸른 도쿄의 하늘은, 처연 했지만 평화로웠다. 막다른 골목길에서 우연히 만난 행운처럼 나의 도쿄는 나에게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 tip
유학을 결심 했다면, 학교도 중요하지만 내가 몇 년간 살 곳이니 신중하게 따져볼 것. 드라마나 영화에 속으면 안 된다. 절대로.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