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봄. 그 꽃 피는 봄을 나는 뉴욕에서 보내기로 했다. 햇살이 쏟아지는 거리를 걷고, 산미가 진한 커피를 마시고, 작은 갤러리들을 찾아다니며 영감이라는 걸 얻고 싶었다. 추운 겨울 내내 얼어붙었던 머리와 마음을 녹이고, 작가로 살고 싶다는 나의 간절한 욕망을 다른 누군가의 작품을 향한 질투로 부풀리고 싶었다. 뉴욕은 그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튼튼한 다리와 지도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혼자 여행하기에 최적화된 곳이니 말이다.
한인 사이트에서 한 달간 자신의 스튜디오를 빌려주겠다는 한 유학생과 몇 번의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보증금과 한 달치 방값을 보냈다. 나보다 더 꼼꼼해 보이는 집주인은 내가 불안하지 않도록 영수증과 보증금을 언제까지 돌려주겠다는 계약서를 보냈다. 스튜디오는 브루클린 다리를 건너자마자 보이는 아담한 주택가에 있었고, 통유리 창문 너머로 보이는 강 건너의 맨해튼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최근 젊은 예술가들이 비싼 맨해튼을 떠나 이곳에 둥지를 틀기 시작한 덕분에 각종 아트 북을 파는 서점들이 들어섰고, 작은 규모지만 개성 넘치는 갤러리들도 골목 곳곳에 자리 잡았다.
날씨가 유난히 흐렸던 금요일, 미술관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날씨 탓인지, 미술관에 사람들이 뜸했다. 작품을 설명해주는 헤드폰을 끼고 느릿느릿 전시장을 돌았다. 미술관을 차지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는 생명력과 에너지가 넘쳤다. 이곳 뉴욕이 자신의 무대임을 당당히 증명해내고 있었다. 그들을 향한 나의 질투는 단박에 부러움이 되었고 넘볼 수 없는 장벽이 되어 금세 주눅 들었다. 어둑어둑해진 브루클린 다리를 축 처진 어깨로 건너며 오늘 저녁은 근사한 걸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더 이상 초라하기 싫었다.
구글이 추천해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스테이크와 와인을 주문하고, 무심하게 주위를 둘러보다 창가 테이블에 마주 앉은 두 노인에게 시선이 멈췄다. 조그만 창문으로 별들이 빽빽한 까만 하늘이 보였고, 두 노인은 서로의 눈을 수시로 마주치며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주문한 고기를 씹으며 그림 속 한 장면 같은 그들을 곁눈질했다. 그들의 식사가 끝나자 자그마한 케이크를 든 웨이터가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그들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한 노인은 박수를 치고 한 노인은 가는 숨으로 촛불을 꼈다. 여든일곱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그들은 이 단골 레스토랑에 온 것이었다. 생일을 맞은 한 노인은 내게도 작은 케이크 한 조각을 건네며 말했다. “인생은 참 아름다워요. 그렇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 그 순간, 마음이 따듯하게 녹아내렸다. 뉴욕에서 본 그 어느 작품보다 감동적이었다. 내가 뉴욕에 온 이유는 이것 때문인지도 몰랐다. 인생은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을 놓치지 말라고. 그리고 그것을 그리고 쓰라고 다짐하기 위해.
# tip
자신의 솔메이트 같은 도시가 있다면 어디든 한 달쯤 살아보자. 현지인처럼 생활하면 생각보다 큰돈이 들지 않는다. 해외일 경우는 한인 사이트를 통해 방학 중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유학생의 집을 빌리면 훨씬 저렴하다. 물론, 신중하게 고르고 확인해야 하지만.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