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발을 하고 힘겹게 연 부엌 선반에서 크고 작은 반찬통이 와르르 한꺼번에 쏟아졌다. 바닥 여기저기에 떨어진 통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이 많은 통들은 도대체 어디서 난 걸까?
집에서 반찬을 실어 나르지 않은 지 꽤 되었다. 할머니가 된 엄마는 어느새 몇 가지나물과 국만 끓여도 몸살이 났고, 김치를 담그지 않은 지는 10년도 넘었다. 어쩌다 엄마가 선보이는 귀한 반찬들은 가족들의 식사 몇 끼만으로 금세 바닥이 났고, 바리바리 싸주던 엄마의 반찬 인심은 뜸해졌다.
외식에 싫증을 느낀 지 꽤 오래된 나로서는 그 대안으로 근처 마트의 반찬 가게를 종종 이용하곤 했는데, 그마저 곧 시들해졌다. 스스로 해 먹을 수 있는 반찬의 종류도 정해져 있어서 몇 날 해 먹으면 물리기 일쑤였다. 이런 나의 반찬 투정을 간간히 듣던 나보다 한참 동생이지만 언니 같은 후배 H는 주말이면 김치는 물론, 갖가지 반찬들을 통에 담아 우리 집 냉장고를 채워줬다. 텃밭을 가꾸는 부모님이 길러낸 유기농 상추도 기다랗고 납작한 통에 꾹꾹 눌러 담아 왔다. 그런 날이면, 삼겹살을 사서 불판에 구워 먹으며 신나 했다. 이 통들의 절반은 H의 집에서 옮겨온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동그랗고 길쭉한 물통 같은 이 통은, 알고 지낸 건 고작 몇 년이지만 힘겨웠던 순간에 구조신호를 보낸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 직장 동료였던 M의 집에서 옮겨왔을 것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M이 다리품을 팔아 찾아낸 원두 가게의 커피콩을 맷돌 돌리듯 정성껏 갈아서 넘치도록 이 통 안에 담아 왔다. 손바닥 크기만 한 정사각형의 통 안에는 최근 빵 만드는 데 취미를 붙인 M이 갓 구워낸 향긋한 스콘이 담겨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저쪽 모퉁이에 처박힌 잔잔한 꽃무늬가 있는 도시락 통은 일 때문에 서먹했던 갑과 을로 만났지만 어느 순간 서로에게 반해서 덜컥 연을 맺어 버린 두 살 터울의 언니가, 내 가방 안에 몰래 넣어둔 것이었다. 그 속에는 언니가 직접 담근 오이지가 가지런히 잠들어 있었다. 요리 초보인 동생을 향한 언니의 오지랖은, 3단으로 탑을 쌓은 앙증맞은 통에 맛을 더하는 데 꼭 필요한 삼총사인 고춧가루, 통깨, 참기름을 담게 했다.
그러고 보니 이 반찬통들은 모두 고마운 사람들이 내게 보낸 선물 상자였다. 이것들을 나는 넙죽 받기만 하고, 아무것도 담아서 돌려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미안해졌다. 오늘은 큰 마트에 가야겠다. 엄마에게 배운 몇 가지 자신 있는 반찬들을 만들어서 이 통에 담아 그들에게 보내야겠다. 그리고 그것들이 그들의 식탁 위에 올라갔을 때, 지금의 나처럼 그들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걸 떠올리며 환하게 웃어주었으면 좋겠다.
# 해결책
지인들 집에 놀러 갈 때 직접 만든 반찬이나 요리를 선물해본다. 만드는 동안 나도 행복해지고, 받는 사람도 그 어떤 선물보다 기쁘고 감동적이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