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전날의 병원 밥
지독히도 나는 건강에 무지한 여인이었다. 건강검진을 제대로 받아본 건 작년 겨울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감기 때문에 찾아간 내과에서 혈색이 너무나 좋지 않다며 피검사를 해보라고 권했다. 그 순간 무슨 불안이 엄습했던 걸까? 처방전을 손에 들고 간호사에게 국가에서 제공하는 건강검진에 관한 질문을 했고 가능하다면 나도 그 혜택을 누리게 해달라고 졸랐다. 연말이라 바쁜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내 몰골과 상태는 같은 여인으로서 거부하기 힘든 연민을 불러내기 충분했다.
그녀들은 다음 주 월요일 병원 문을 열자마자 생긴 틈을 비집어 나를 끼워 넣고 시간을 엄수해 달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병원 문을 나왔다. 검진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입 속으로 기다란 호수를 밀어 넣어 침 범벅의 끔찍한 구역질이 났던 내시경 검사를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일상적인 검사였다. 일주일 후 결과가 나왔고 정상인의 반 토막 인 빈혈 수치에 의사는 깜짝 놀라며 한 달치의 빈혈약을 처방하고 빨간 살코기를 많이 먹으라고 했다.
그리고 새해가 밝았다. 연초부터 나의 컨디션은 계속 바닥이었고 자꾸 피곤하고 쉽게 지쳤다. 그러던 어느 날 샤워를 하고 바디로션을 바르는데 어느새 뿔룩 나온 아랫배가 딱딱하게 만져졌다.‘배가 나온 것도 짜증 나는 일인데 이 딱딱함은 뭘까?’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아마도 촘촘하게 쌓인 체지방 탓이라고 생각하며 운동과 다이어트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 후에도 내 아랫배는 여전히 그대로 나와 있었고 나의 신경이 차츰 무뎌 갈 무렵, 나는 참을 수 없는 허리 통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심한 허리 통증은 빠른 생리로 이어졌고 엄청나게 쏟아지는 생리혈은 나를 순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래도 생각했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이런 걸 거야. 며칠 지나면 괜찮을 거야.
그러나 나의 이 망할 긍정마인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부인과를 찾게 되었다. 나보다 몇 살은 어려 보이는 긴 생머리의 얼굴이 갸름한 여의사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자궁 속에 10센티가 넘는 근종이 자리 잡고 있음을 나에게 알리고 수술을 해야 하니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리고 나와 시선도 마주치지 않은 채 컴퓨터 자판을 거칠게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자기 몸에 좀 예민하게 우왕 떠는 것도 나쁘지 않다니까. 이렇게 둔해서 병을 키우는 것보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모를 수 있었을까? 아랫배에 딱딱한 게 만져질 텐데. 그게 다 혹인데… ”그렇게 그녀는 날카롭게 또 나를 향해 비수를 꽂았다.
대학병원에서는 아주 쿨 하게 마치 점심 약속을 하듯 내 수술 날짜를 잡아 주었다. 수술 전날, 입원실 안내를 받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피검사를 하고 줄줄이 의사들이 오가며 수술에 관한 섬뜩한 설명이 이어졌다. 오후 6시를 조금 넘기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는지 야채 죽에 심심한 간을 한 몇 가지 찬과 물김치가 담긴 한상이 내 앞에 놓였다. 수술 전 마지막 식사라고 했다. 나는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며칠간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숟가락을 들고 야채 죽을 한 입 떠 넣었다. 그 순간, 어느새 차오른 눈물이 야채 죽 위로 뚝뚝 떨어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쓰기만 한 내 몸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과 연초에‘이제, 네 건강은 네가 챙겨야 한다’며 비싼 공진단을 내 가방 속에 넣어주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수술은 잘 끝났고 나는 감쪽같이 건강해졌다. 그리고 뿔룩하던 아랫배는 몰라보게 홀쭉해졌고 몸은 한결 가벼워졌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내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해 준 수술 전 날의 병원 밥 – 청승맞은 눈물은 뚝 그치고 조금 더 맛있게 먹을걸 그랬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