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카프카는 마지막 일기에 이렇게 썼다.‘모든 것은 오고 가고 또 온다’
회사를 떠났다고 올 일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오지 않을 일이 오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 관점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내가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세상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의 길에 다가오는 많은 것들이, 나의 속도로 잘 지나가도록 충분히 숨을 고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마냥 뒷짐을 지자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나에게 진짜 기회를 주고 싶었다. 앞으로는, 누구의 몫이 더 큰지, 누구의 짐이 더 큰지, 더 이상 따지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집중하는 지루하고 평범한 날들을 보내고 또 보내면서, 어느 순간 이렇게 살아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때까지 기다려 주고 싶었다. 그동안 나는 할 만큼 했다고 믿었고, 내가 이룬 것 따위들을 꺼내 보이며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단지, 스스로의 납득이 필요했다. 그래도 괜찮은, 그래서 달라진, 그리고 나다운… 덤덤하게 흘러 보내는 것 같은 그 시간들을 기꺼이 참아내야 했다.
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일이 전부였던 인생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일에만 의존하며 보내던 하루가 너무 익숙한 나머지 그렇게 살지 않으면 살 수 없을 지경이 된 스스로에게, 이제부터라도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게 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묻기보다 따뜻하고 상냥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응원을 해주며 살겠다는 이야기이다.
일에서, 누구나 자신만의 화양 연화가 있다. 거창하게 세상이 알아주지 않았을 뿐이다.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이 없고, 그렇게 만들어낸 결과가 너무 기특해서 퇴근길에 절로 웃음이 나왔던 순간들. 그런 순간을 한 번이라도 경험했다면, 일에서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당신은 최고의 시절을 담담하게 지나갔거나 가고 있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어떤 이유로 일을 떠나게 되었다고 해서,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다. 이제는 선택이다. 더 나아갈 것인가, 다른 길을 둘러볼 것인가. 결정은 오롯이 당신의 몫이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 말자. 반복되는 루틴은 안정감을 주지만,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그러니까 자꾸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모호한 불안감은‘설마’로 떨쳐내면 그만이다. -당신의 걱정하는 일의 90%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더 이상 밤에 자책하는 내가 되지 않으며, 평범하게 잘 해온 그저 그런 하루를 반복해도 괜찮다고. 너의 불안은 당연한 것이며 누구나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거리낌 없이 말해주어야 한다. 더 이상 확신에 찬 삶을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 뒤돌아 보면, 나의 확신은 오만에 가까웠고, 자만의 다른 이름이었으며, 나약한 내 마음과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방편이었다. 단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아지도록 하면 된다. 그러면서 나를 이해하면 된다. 나를 이해하면 세상에 이해 못할 일이 없게 된다. 그 순간, 세상은 내 편이 되고 나는 세상의 편이 된다. 남은 생은 이렇게 살아도 근사하지 않을까?
<아네고 에미>
그동안 <남은 생은 일하지 않습니다>를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