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의 조건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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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에 코로나만큼 매일 등장하는 이슈는

다름 아닌 바로, 집이죠.

치솟는 아파트값을 끌어내리겠다고

법을 바꾸고, 그랬더니 전세가 씨가 말라

지금 당장 살 집을 구해야 하는 사람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네요.


집이란 내 몸 하나 덜렁 누이면 그만인

방 한 칸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방 한 칸을 제외하고

다른 공간을 백 퍼센트 활용하지도

못하면서 쓸고 닦고 하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해야 는 공간들의 집합체 -

그것이 바로 집, 아닐까요?


도쿄 유학시절,

날마다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죠.

'집이란 그저 내 몸을 누이는

네모난 곳에 불과하다

그 이상을 욕심내지 말아야 해'

솔직히 집이라고 하기에 너무 작아서

그랬기도 했지만

다들 그렇게 사니까

원래 집이란 그런 곳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저의 뇌리에

스며들고 말았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신기한 것이 이 자그마한

공간에서 먹고 자고

밤새도록 그림을 그리고

친구들을 불러 모아 홈 파티를 하고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가며

하고 싶은 것을 하고도

남을 공간으로 변신시켜가지 뭐예요


좀처럼 눈이 오지 않은 도쿄에

첫눈이 펑펑 오던 날이었어요

작은 집 덕분에 방석만 한 난방기 하나로

공기는 금방 훈훈해지고

도톰한 무릎 담요를 덮고

네모난 테이블 속으로 두 다리를

쭉 뻗으니 어느새 노곤노곤 해졌죠

나도 모르게 실눈을 뜨고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면서

'아 우리 집 참 포근하다'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렇게 두 번째 맞는 겨울에

도쿄의 작은 집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죠.

그 덕분인지 집이란 공간의 크기보다

나를 감싸 안아주는 그 어떤

편안함과 아늑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가끔 '나 혼자 산다'라고

전 국민에게 신고하는 유명 셀럽들의

집들이 티브 속에서 공개될 때마다

'우와, 집이 저렇게 크구나

별별 공간이 다 있네~ 뷰도 엄청나네'

하고 부러운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때마다 크게 팔을 벌려 감싸듯

저를 포위하고 있는 네모난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게 되죠.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작고

창밖의 풍경도 볼품없고

방과 부엌 겸 거실이 전부지만

왠지 저를 쏙 빼닮아서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토닥이곤 했죠.


한때는 좀 더 큰 집을 욕심낸 적도 있었지요,

(작업실을 갖고 싶어지거든요)

그러나, 제법 널찍한 책상을 주문 제작해서

침대방의 한 컷을 내주고 나니

이 공간이 이렇게 컸었나 하는

흐뭇한 생각까지 들면서

마음속으로 공간을 두 개로 쪼개서

이곳은 자는 곳, 저곳은 작업하는 곳

이렇게 나누고 나니

작업실 생각은 싹 사라지고 말았답니다.


이번 생에 제 이름으로 된

근사한 집을 갖기는 어려울지도 몰라요.

그러나 더 좋은 집을 아쉬워하기보다

더 나 다운 집을 꾸며가기에

즐겁게 몰입해 보려고요.

특히, 겨울에는 집 꾸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계절이죠.

찬바람이 창틀 사이로

솔솔 새어들기 시작하는 12월이면

저는 무릎담요에 핀을 끼워서

커튼 대신 사용해요.

바람도 든든하고 막아주고

은근슬쩍 연말 기분을 내기에 그만이랍니다.


집은 그저 집답게 쓰고

집이 부러움이나 마음의 짐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무릎담요만으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공간이

바로 집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커피 한 잔을 내리고

보라색 꽃으로 수놓은 오렌지 빛깔 담요를

침대 옆 창문에 걸어봤어요

잔뜩 구름이 낀 하늘에서

왠지 눈을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남은 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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