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리 났어, 난리.. 날씨가 난리 났어."
아침부터 전화를 해서
저의 늦잠을 깨우는
이 꾀꼬리 같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일중독도 모자라
최근 일벌레로 전략한
자신을 위해
과감히 2주간의 안식휴가를
선언한 10년 지기
후배의 J입니다.
그러고 보니
바야흐로 봄이네요.
추위를 많이 타는 탓에
아직도 겨울 내복을 벗지 못한
저의 본새를 힐끔거리며,
아주 오랜만에 평일의
브런치를 그녀와 함께 먹기로 했죠
그리고, 산책도 하고
예쁜 봄옷도 몇 벌 사자고
그녀가 바람을 잡았죠.
평소보다 조금 더
공을 들여서 화장을 하고
옷장문을 활짝 열었죠.
봄의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칙칙한 겨울의 밤 같은
옷들이 줄줄이
저의 간택을 기다리네요.
한마디로, 이 기분을
제대로 받쳐줄 옷이
한벌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죠.
멍하니 옷장 안을 들여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났죠.
주말에 K와 나눴던
전화 통화가 생각났기 때문이었죠.
일을 떠난 저와 달리
자신의 이름으로 회사를 운영하며
아직도 현업에서 씩씩하게
버티고 있는 그녀는
옷잘 입기로 유명했답니다.
작고 아담한 체격이지만
그녀의 패션 센스는
과감한 프린터를 한 티셔츠에서
고개를 가로저을 때마다
살짝살짝 보이는 귀걸이에서
립스틱과 같은 컬러인 뾰족한 구두에서...
그녀가 입고 걸친 모든 것들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답니다.
꾸미고 가꾸는 센스라고는
어설프게 유행을 따라 하는 게
전부 인 저는 그런 그녀가
참 부러웠답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강산이 몇 번이 바뀌어도
변치 않은 갑질에 대해
성토를 하다가... 갑자기
이제, 차려입는 것도
귀찮다는 넋두리를 시작했죠
뻑하면 정신줄을 놓는
저질 체력을 위해
이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옷보다 보약이라지 뭐예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빵 하고 웃음보가 터졌죠.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것도
그러하지만, 너무나
공감이 되어서 전화기를 들고
한참을 웃었죠.
문득, 최근에 본 드라마 대사가 떠오르네요.
'예쁜 여자란, 일류 브랜드의
멋진 옷을 입어서가 아니라
일류 브랜드의 멋진 옷을
제멋대로 휘두를 줄 아는 여자'라고요.
'그 옷 앞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을 당당히 뽐내는데 써야 한다' 고요..
그래요, 봄옷보다 보약이
더 솔깃한 나이가 되었지만...
오늘은요, 화사한 봄옷들 앞에
절대 주눅 들지 않으며
나잇살에 통통해진 제 몸을
뽐내 줄 화사한 옷 한 벌 살 겁니다.
저도 예쁜 여자니까요.
<남은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