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야 사는 여자

by anego emi

지금도 그런 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본의 예능 프로는 반 이상이 먹는 거랍니다

구석구석 맛집 탐방은 기본,

유명 레스토랑의 인기 메뉴 맞추기,

최근 가장 핫한 스타가 만드는 요리비법,

까무러칠 만큼 희귀한 방법으로 음식 섞어먹기,

다른 나라의 혐오식품 먹기 등등.

별 이상한 아이디어들을 맛나게 버물려

예능 프로로 푸짐하게 한 상 차려 놓곤 했죠.


일본 드라마 또한 분기별로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소재가 먹는 것인데요

동네 식당을 배경으로 유난히 식탐이 많은

명랑한 여주인공이 등장한다던가

사연이 있는 그늘 진 미남 세프가 등장한다던가

(앞으로 펼쳐질 스토리 라인이

파일럿이 끝나자마자 예상되죠 )

그런데 신기하게도 또 그 드라마들이 인기를 타고

날마다 먹는 즐거움을 배가 시킨답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예능 프로들을 보면

정말 음식과 요리에 대한 것들이 차고 넘치죠.

아이부터 어른까지 먹방은 빠질 수 없는

감초 같은 존재가 되었고, 맛집 소개 프로들이

종편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말이죠.

왜 우린 이 프로들에 열광하는 걸까요?

저 또한 구구절절 유치한 드라마보다

시끄러운 막장 프로보다

이 요리 프로들을 즐겨보곤 하는데요

나를 대신해서 속 시원하게 먹어주는 것도

대리 만족이 될뿐더러, 맛나게 먹고 있는

그네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침이 고이지 뭐예요.


그러고 보면, 참 음식의 힘은 위대한 것 같아요

언젠가 회사 근처의 꾸불꾸불한 골목에 숨어 있는

허름한 칼국수 집을 후배들과 간 적이 있었죠.

그날도 삽질 같은 회의를

몇 차례 고문처럼 해치우고

답 같지도 않은 답을 손에 진채로

허기진 배나 채울 요량으로

무심코 문을 연 곳이 바로, 그 칼국수집이었어요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구수한 멸치육수 냄새가

잊었던 식욕을 자극하고 김이 설설 나는

칼국수가 우리 앞에 놓이자,

우리는 모두 말을 잃고 젓가락질을 시작했죠.

정말 맛있었어요. 아니 감동적이었죠

하루 종일 공허했던 텅 빈 우리의 마음을

따끈한 그 무엇으로 든든하게

채우기에 충분했거든요.

맛나게 한 그릇을 후다닥 비우고 나오며

저는 후배들에게 말했어요.

" 야~ 우리가 하는 일도 이 국수 한 그릇만큼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일 일까?

갑자기 우리가 하는 일이

이 국수보다 못한 거 같아서 조금 슬프다."

서로 씁쓸한 미소를 교환하며

회사로 걸어가는 동안,

무심코 내 뱉은 그 말에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답니다.


그래요. 누군가를 위해

시간과 돈과 정성을 투자해야 하는

요리라는 마법을 거쳐 나온 음식은

세상을 감동시키기 위한 최고의 방법인지도 몰라요.

요리를 해서 돈을 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가장 멋있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요.

저 또한 그림을 그리겠다고

먼저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요리사가 되고 싶었답니다

(솜씨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맛있는 요리로 감동을 주고

덤으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또 있을까요?


오늘 산책의 마지막 길에 동네 시장에 들렀어요.

반찬가게 과일가게 생선가게,

조그만 자판의 나물 다듬는 할머니들...

아~ 누군가를 감동시킬 그 무엇들이 되기 위한

맛있는 향연이 시작되는 곳이네요.

언젠가 나도 조그마한 그림이 있는 작은 밥집,

그림 같은 밥집을 한번 시작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네요. 아... 배고프다.


<남은 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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