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미역이 너무 먹고 싶어.
겨울철에 먹을 수 있는 생미역.."
이 뜬금없는 미역 타령은
시애틀에 살고 있는 친구가
금요일 밤 한잔의 맥주를 거칠게 비우고
쏟아낸 고국의 음식을 향한 애끓는 넋두리입니다.
오랜만에... 우리는 손바닥 만한 화면으로
취중 수다를 떨었죠. 시차를 감안하면
저는 토요일의 낮술이 되었고
친구는 불타는 금요일 밤술이 되었죠.
차가운 샤르도네를 홀짝이는 저와 달리
친구는 시애들 근처 양조장에서 직접 사 온
수제 맥주를 목이 기다란 유리잔에 넘치게 따르고
씩씩하게 연거푸 마셨죠.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옛날 세대인 저와 친구는 이런 랜선 수다가
어색하고 낯설기 마련이죠.
간단한 안부에 이어 빤한 일상의 이야기가 오가고
코로나 탓에 한국에 오지도
미국에 가지도 못하는 깝깝한 현실을 한탄하다가
요즘은 외식도 못하는 비상시국이니
끼니마다 뭘 해 먹는지에 관한 질문으로 이어졌죠.
배달의 천국에 사는 저야 뭐든
시켜먹으면 되지만,
고작 일주일에 한 번 대형 마트에
가는 것이 전부인 친구는 지겨운 미국 음식들의
레퍼토리에 식욕을 잃은 지 오래전이라며
깊은 한숨을 토해내지 뭐예요.
그러고 보니 안 그래도 작은 얼굴이 반쪽이네요.
저는 안쓰러운 마음에 내일은 주말이니
오랜만에 남편이랑 마당에서 스테이크라도
구워서 몸보신이라도 하라고 바람을 잡았죠.
그런 저를 반쯤 감긴 눈으로 빤히 보던 친구는
요즘 너무 먹고 싶어서
꿈에도 나오는 음식이 있다며
화면 앞으로 얼굴을 쑥 내밀지 뭐예요.
저는 뭐든 말만 하라며...
엄청난 배송비를 감안하더라도
베프의 이름으로 뭐든 보내주겠다 하고
큰소리를 쳤죠.
친구는 적당히 오른 취기로 발그스레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죠.
" 진짜? 보내줄 거야? 진짜? 진짜? "
" 그럼.. 그럼.. 하나뿐인 베프가 먹고 싶다는데..."
" 나 미역이 너무 먹고 싶어.
생미역.. 생미역을 돌돌 크게 말아서
초장에 폭 찍어서 한입에 우걱우걱 먹고 싶어 ~"
" 야.. 너 스테이크보다 미역이야?
그게 그렇게 먹고 싶어? "
말하기가 무섭게 고개를 힘껏 끄덕이는 친구를 보며
저는 푸하~ 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죠.
아무리 외국 땅이 좋아도 나이가 들면
한국에 가서 살고 싶다던
교포 어르신들의 이야기가 문득 떠오릅니다.
그 이유인즉, 언제든지 친구들 얼굴도 보고
출출하면 시장에 가서 주전부리도 사 먹고
싱싱한 제철 음식도 실컷 먹고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하시네요.
그래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 또한 유학시절 제일 먹고 싶었던 것은
시장에서 파는 빨간 떡볶이, 튀김,
순대 같은 것들이었네요.
생각나면 언제든지 사 먹을 수 있었던
그 흔하고 평범한 음식들이 얼마나 그리웠던지요.
아... 그래서, 오늘도 저는 행복해질까 합니다.
떡볶이도 사 먹고, 친구가 그렇게 먹고 싶어 하던
스테이크보다 대단한 생미역도 사서
한번 맛나게 무쳐보렵니다.
<남은 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