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의 옆집

by anego emi

서촌에는 유명한 삼계탕집이 있죠.

푹푹 찌는 한 여름에도

언제나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맛집의 위력을 실감하곤 했는데요

어느 날, 그 앞집에 보리밥과 칼국수를

파는 조그마한 식당이 생겼답니다.

허기진 배를 안고 긴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둘 식당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나름의 맛집으로

슬그머니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죠.

뭐.. 기본적으로 음식 맛이 나쁘지

않았겠지만. '시장이 반찬'이라는

절체절명의 타이밍을 잘 탄 덕분이기도 하겠지요.


주말에 우연히 '맛집의 옆집'이라는

예능 프로를 보게 되었는데

사장님들의 재치와 배짱이

얼마나 두둑하던지요. 게다가

입담들도 좋으셔서 엠씨들의 웃음이

끊이지 않았죠. 맛집 옆에서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요.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법인데

옆집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되는 그 걸음을

아무도 옮겨주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집 사장님들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음식에 대한 자부심과

좀 부족해도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맛과 멋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죠. 맛집 사장님들도

함께 잘 돼야 한다며 자신들의 레시피도

공개하고 장사에 도움이 되는

충고도 아끼지 않으셨답니다

요즘 같이 자영업이 어려운 시절에

더불에 사는 공생의 개념은

가장 쿨한 미덕이자 살아가는 힘이겠지요.


그러고 보니, 제가 사는 동네 시장 골목에

늘 줄을 서는 떡볶이 집이 있답니다.

방송을 타고 유명해진 그 떡볶이 집의

옆집에 또 다른 떡볶이 집이 있는데요

유명세를 탄 그 떡볶이 집이

외부에서 찾아온 손님이 많은 편에 비해

그 옆집은 동네 손님이 많죠.

1인분의 가격도 500원 싸고

향긋한 깻잎을 고명으로 올려주는 것이

차별점이고 양도 제법 푸짐하거든요

그 덕분인지 줄 서는 맛집 옆에서도

절대 기죽지 않으며 굿굿하게

장사를 이어가고 있답니다.


코로나 덕분에 한산했던 동네 가게들이

언제부터인가 주말이면 다시 북적이기 시작했죠

동네 주민으로서 참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제가 사는 이 동네가 참 좋거든요.

몇 년 전이었던가요, 대구에 사는 동생네

식구가 갑자기 놀러 온 적이 있었죠.

조카들이 아직 어렸을 때인지라

좁은 제 집에서 옹기종기 모여 놀다가

저녁 무렵 동네 시장 골목에 있는

중국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죠.

동생과 저는 밥 생각이 별로 없었던 지라

조카들을 위해 자장면 두 그릇과

탕수육이 세트인 메뉴와

추가로 볶음밥 그리고 맥주 두병을 시켰는데

이 동네 토박이 사장님께서

자장면을 한 그릇 더 주시면서 남겨도 되니까

푸짐하게 드시라 하지 뭐예요.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아직 꼬맹이긴 해도

3명의 조카들과 3명의 성인이 먹기엔

좀 부족해 보이셨던 까닭이지요.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맙던지요.

주신 자장면을 남김없이 다 먹고

맥주 두병을 더 비우고 가게를 나왔답니다.

동네 인심이 이런 거지 하면서 말이죠.


큰 마트보다 동네 가게를 가고

새벽 배송도 좋지만 길거리 자판의

과일과 야채를 사면서

소소한 일상의 대화를 나누고

작고 오래된 골목 분식집에서

재료를 아끼지 않고 정성껏 싸주시는

김밥 한 줄을 손에 쥐고

' 잘 먹겠습니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는 것-

이 척박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위로받고 우리를 위로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요.

아마, 맛집의 옆집도 그런 위로와 응원이

간절히 필요하겠지요.

게다가, 예상을 깨고 옆집이 더 맛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직접 먹어보기

전에는 모르지 않겠어요?


<남은 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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