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이니까 어쩔 수 없다

나 홀로 이겨낸 첫 수술기 [3]

by anego emi
이 또한 지나간다

수술 예정 시간보다 2-3시간이나 이른 시간에 간호사는 나에게로 와 지금 수술실로 가야 한다고 했다. 오늘 나의 손을 잡아 줄 그녀가 아직 도착하기도 전에 말이다. 그녀에게 지금 수술실로 들어간다는 문자도 남기지 못한 채 나는 건장해 보이는 두 청년이 끄는 이동용 침대에 옮겨져 중앙 수술실로 향하고 있다. 수술실의 문이 열리고 수술을 기다리는 침대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고 있다. 내 곁으로 다가온 간호사는 내 이름을 확인하고 수술 모자를 씌우고 마지막 혈압을 재고 나를 잠시 방치한다. 점점 뚜렷해지는 정신과 함께 내 눈동자 속으로 천장 위에 동글동글 떠있는 작은 보름달들이 출렁인다. 아.. 드디어 시작인 건가. 그리고 "마취할게요. 조금 몸이 뜨거워질 거예요. 천천히 숨을 쉬세요." 그리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꿈결인가... 저 멀리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며 정신이 혼미한 나를 흔들어 깨운다. 눈을 뜨는 순간 내 눈앞에서 파란색, 보라색 가운을 입은 난쟁이 같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그리고 태어나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격한 통증이 내 온몸을 자극한다.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난다. 다시 정신을 혼미해진다. 그런 나를 누군가 또 흔들어 깨운다."잠들면 안 돼요. 아프면 이걸 누르세요. 진통제가 투여되는 거예요. 이걸 이렇게 누르세요." 축 처진 내 손에 검지 손가락 만한 길쭉한 막대를 꼭 쥐어주며 그 위의 버튼을 누르라고 당부를 하며 침대 위에 방치된 내 몸 위로 이불을 덮어준다.


내 이름을 듣고 회복실로 뛰어들어온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언니.. 다 끝났어. 고생했어. 이제 괜찮을 거야" 희미하게 내 눈에 들어온 그녀의 얼굴은 천사처럼 보였다. 그리고 병실로 이동한 나는 간호사들이 찔러 때는 바늘의 통증을 아무렇지 않게 참아내며 서너 병의 링거병을 주렁주렁 달고 의식을 잃어간다. 간호사들이 그녀에게 1시간 동안 절대 잠들면 안 되니까 수시로 말도 시키고 깨우라고 한다. 그녀은 " 언니 언니... 정신 차려야 한데. 잠들면 안 돼. 언니 언니..." 그녀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수차레 반복하고 나는 그녀의 노력 덕에 한 시간을 꾸역꾸역 희미한 정신으로 버텨냈다. 그리고 한 시간 후에 기절하듯 잠이 들었고 나의 통증은 조금씩 참을 만한 수준으로 진정되고 있었다. 그 후 저녁 무렵 회진을 온 주치의는 근종이 크기가 생각보다 더 컸다고 으름장을 놓고 이제 괜찮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인상 좋은 외할아버지 같은 미소를 짓고 사라진다. 아... 끝났다. 눈을 감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녀에게 들키지 않도록 얼른 이불속에서 눈물을 훔쳐내고 그녀에게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고마움을 내 눈빛으로 전달하고 나는 또 잠이 들었다. 오후 9시를 훌쩍 넘기고 조금 더 있겠다는 그녀에게 얼른 돌아가라고 재촉을 하고 그녀는 바삭바삭 말라가는 내 입술에 젖은 거즈를 물려주며 " 언니... 너무 목이 타면 이렇게 젖은 거즈로 입안을 축여. 아직 물도 먹으면 안 되는 거니까... " 그녀가 돌아가고 병실은 어둠 속에 잠기고 창밖 건물들의 불빛은 새벽 내내 꺼질 줄 모른다. 아... 누군가는 오늘도 야근을 하는구나. 그런데 그 순간 왜 주마등처럼 20년간의 내 직장 생활이 떠올랐을까? 정신없이 분주하기만 했던 신입시절부터 야근으로 일괄된 나의 대리 시절. 늘 괴롭고 힘들고 버거웠던 나의 차장 시절. 그리고 혼자서 수없이 좌절과 배신의 밤으로 고독했던 나의 부장 시절. 그리고 아무에게도 속내를 말하지 못한 채 몰래 짐을 싸서 회사를 나왔던 마지막 날의 나... 또르르 ~ 눈물 한 방울이 흐른다. 아마도 이렇게 홀로 병실에 누워 고통을 참아내는 것이 그동안 나를 한 번도 돌보지 못한 채 일과 회사에 모든 것을 풍덩 던진 것에 대한 댓가 일까? '인과율'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의 결과는 반드시 원인이 없으면 생기지 않는 법... 나는 지금 그 원인에 대한 댓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통증이 몰려온다. 나는 기절하듯 잠이 든다. 그리고 다음날은 이른 아침 혈압을 재러 오는 간호사 언니의 알듯 말듯한 미소와 함께 시작되었다. 나는 꼼짝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고 그저 수액과 진통제와 항생제와 덤으로 3통의 수혈을 받으며 하루를 보냈다. 새벽녘에 나의 목은 타들어 가고 입엔 문 거즈의 미 직지 근한 물 한방으로 간신히 참아낸다. 움직여야 가스가 빨리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움직일 수가 없다. 몇 걸음을 떼면 찢어질 듯한 통증과 어지럼 증이 몰려온다. 간신히 병실을 한 바퀴 돌고 나와 같이 그저 좀비처럼 링거를 끌며 병실을 도는 멍한 그들과 몇 번이나 눈을 마두 치고 침대로 돌아왔다. 수술 한지 3일째가 되어도 가스는 나오지 않았고 마취하면서 자극을 받는 내 편도는 마른기침을 자꾸 유발하고 나의 배는 찢어질 듯한 통증으로 까무러칠 지경이다. 식은땀을 흘리면 물을 축인 거즈를 입에 물고 다짐해 본다. 이 또한 지나간다. 내일이면 끝난다. 새벽녘에 또 다른 수액병을 걸어주며 목소리가 예쁜 간호사는 나를 위로한다. " 곧 가스 나올 거예요. 아프더라도 조금씩 움직이세요. 오늘은 가스가 나올 거예요. 꼭~ " 그녀의 말 때문일까? 점점 병실이 환해질 때쯤 나는 가스가 나왔고 한 시간 후에 나는 감격의 물 한 모금을 마실 수 있었다. 거봐.. 이 또한 지나간다고 했잖아. 그리고 수술 전에 먹었던 죽보다 더 심심한 미음을 점심으로 먹었고 저녁엔 야채죽을 억지로 입속으로 넣었다. 먹고 힘내야지. 내일이면 퇴원이다. 저녁 무렵 회진을 온 주치의는 빈혈 수치가 아직도 정상이 아닌 것은 물론, 가스가 너무 늦에 나왔으니 하루 더 병원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어지럼증이 움직일 때마다 씁쓸한 뒤끝을 남긴다. 다인실로 옮긴 나는 처음으로 병원을 들여다본다. 나를 제외한 4명의 환자는 모두 암 환자들이다. 위험하지는 않지만 언제든지 위험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는 그녀들. 밤이면 그녀들의 한숨소리와 신음소리들이 간간히 들린다. 그녀들의 밤은 어떻게 흘러가는 걸까? 퇴원하기 전 마지막으로 철분제 한통을 맞고 퇴원 안내서와 처방약을 받아 들고 나는 혼자 퇴원수속을 했다. 그냥 혼자이고 싶었다. 혼자서 이 엄청난 해프닝의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일주일 만에 나온 바깥세상은 변한 것이 없고 후덥 한 바람이 분다. 택시를 기다리며 하늘을 본다. 흐리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세상은 활기차고 바쁘고 어디론가 움직이고 다양한 사람들로 넘처난다. 나는 잠시 동안 그 속에서 미아가 되었다.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잠시 주저앉았다.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고 억지로 미소를 지어본다. 나에게... 처음으로 진심 어린 미소를 지어본다. 힘들었던 시간을 잘 버텨낸 나에게.... 이 시간들이 나에게 또 다른 결과를 선물해 주리라. 이제, 다시 씩씩하게 나를 위해 걸어가면 되는 거다. 속도를 높일 필요도 폼나게 걸을 필요도 없다. 내 방식대로 천천히 주위도 둘러보고 누군가의 손도 잡아주고 다리가 아프면 주저앉기도 하면서 나는 남은 내 인생 속으로 걸어갈 것이다. 꼭 행복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저 불행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내가 나를 응원해 주면 그만인 것이다. 그래... 이제 집으로 가자. 씩씩하게....



<3편 완결>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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