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힘들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20살을 이기고 30살을 버티고 드디어 40살이 내 것이 되면 좀 더 편안하고 훨씬 안정적이고 살짝 폼도 나고 그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천직이라 우기면서 믿었던 일을 묵묵히 이어가며 살아가면 그만 일 거라고 … 뭘 하는 지도 뭘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신입시절, 나의 롤 모델이었던 그녀가 쓴 책 속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지금의 내가 아니라 되고 싶은 나를 상상하라. 그런 그녀라면 지금 무엇을 했을지를 생각해보라. 그렇게 하루하루 내가 아닌 그녀가 되어 보라고 했다. 그 마법 같은 주문은 나에게 통했다. 그때의 비루하고 무능한 나는 그저 유능한 그녀가 거쳐야 하는 과정이며 나는 그 시간을 굿굿하게 버텨나가면 되었다. 그러나 그 마법은 점점 아무리 주문을 외워도 힘을 내지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고 나는 처음으로 늦은 새벽 퇴근길에 아파트 초입의 조그만 슈퍼에서 맥주 2캔을 샀다. 그리고 그 앞의 평상에 쪼그리고 앉아 눈문을 펑펑 쏟으며 연달아 맥주를 마셨다. 주위의 시선 따위는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나는 그저 속이 터질 것 같았고 미치기 일보직전이었으니까...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다. 몇 번의 사표를 쓰고 회사를 옯기고 나의 커리어도 쌓이고 나는 소위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났다. 그 이유야 차고 넘치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미련도 아쉬움도 없었다.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그 이상은 없다고 생각했다. 소위 '번 아웃'이 된 것이다. 그리고 마흔이 되었다. 마흔의 새해가 밝음과 동시에 신입시절 내가 수없이 마음속으로 그렸던 상상 속의 그녀는 말끔히 사라졌다. 다시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 지를 여전히 고민하고 별일도 아닌 일에 상처받고 가끔은 혼자 훌쩍이며 옛날 영화를 보고 아무 이유 없이 방구석에서 맥주캔을 쌓아간다. 이 정도 살았으면 이 정도 사회라는 지랄 맞은 곳에서 벼텼으면... 좀 심플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사는 것이 웃는 것이 이기는 것이 용서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 그리고 염치없이 행복해지는 것이... 마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다. 여전히 그냥 힘들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