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제 입으로 이렇게 밝히기에도
죄송스러운 얕고 게으른
신앙심을 키우고 있지만 말이죠.
저는 도쿄의 한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답니다.
엄마의 소원에 가까운 부탁이기도 했고
도쿄에서의 생활이 참으로
외롭고 막막했기 때문이기도 했지요.
다행히, 좋은 대모님을 만나서
어머니 같은 따듯함을 주일마다
그분을 통해 느낄 수 있었고
아낌없이 준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동과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답니다.
세 달 간의 교리 공부가 끝나고
세례식을 하루 앞둔 날,
저의 대모님은 따듯한 온기가
느껴지는 하얀 두 손으로 제 손을
꼭 감싸 쥐며 말씀하셨죠.
'우리 딸, 세례 후 처음으로 영성체를
(신부님이 주시는 동전만 한 동그란 밀떡)
받은 후에, 주님께 비는 세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신대.. 그러니 기도해봐 '
그날 밤 내내 저는 고민에 빠졌답니다.
'무슨 소원을 빌까' 하고요.
정말로 대모님의 말씀대로
꼭 이뤄질 것 같은 확신이 들었거든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얼굴이 화끈거리기는 하지만
저의 세 가지 소원은 다음과 같았답니다
첫 번째 소원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남은 생을 살고 싶다고
두 번째 소원은 저의 이기심 이나 욕심으로
누군가를 상처 주거나
아프게 하는 일 없이 살고 싶다고
그리고 마지막 소원은 말이죠.
다시 누군가를 가슴 아프게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답니다.
제 소원은 이뤄졌을까요?
네. 놀랍게도 이루어졌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글과 그림을 그리며
작가로 살아가고 있고 (물론, 틈틈이
용돈을 벌기 위해 프리랜서로 일도 합니다)
치열했던 사회생활을 접고
성공을 향한 맹목적인 열정을 덜어내니
저로 인해 사람들이 상처 받는 일이
자연스럽게 줄었거나 사라졌고요
(그러나, 모르지요, 제가 또 상처를 주었는 지도요)
최소한 스스로 그것을 의식하고
노력하고 애쓰려고 하니까요.
마지막은 말이죠. 도쿄를 떠나기
몇 달 전에 이루어졌답니다.
솔직히 대학을 졸업한 후에,
이렇게 가슴이 두근대는 건 첨이었거든요.
일본은 졸업식을 비교적 거창하게
하는 편인데요, 큰 회관을 빌려
가족들을 초대하고, 기모노나 정장을 차려입고
졸업생들은 축제 분위기에 흠뻑 빠지죠.
18살 청춘들은 드디어 성인 되었고
학교는 졸업을 축하며 조그만 연회를 준비했죠.
(물론, 참가비가 있지요)
큼직한 바를 빌려서 축하파티를 열고
맥주와 칵테일을 즐기며
진짜 어른이 된 기분에 빠지게 된답니다.
저야, 이미 차고 넘치는 나이지만
괜스레 그들의 들뜬 웃음소리에
함께 녹아들며 몇 잔의 칵테일을 비우고
같이 밤샘 작업을 하던 친구들과
테이블에 도란도란 모여 앉아
수다를 떨었죠. 그런데 말이죠.
그런 저를 빤히 보는 까만 슈트를 입은
키가 훌쩍 큰 남학생이 있었죠.
처음에는 일러스트 작가인가 하고 생각했죠.
졸업생 중에는 꽤 유명 작가가 된
선배들이 많았고, 학원제나
포트폴리오 작업을 도와주고
응원해주는 모임이 많았기에
그중에 한 명인가 하고 생각했답니다.
제 옆에서 연신 맥주를 비우던
대만 유학생 K가, 그를 발견하고
손을 번쩍 들지 뭐예요.
K와 같은 대만 유학생인 그는
그래픽 디자인 전공이었고
누나라고 부르며 저를 잘 따르던
K와 절친 사이었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테이블에 합류한 그는
별로 말이 없었는데, 웃는 얼굴이
참 편안해 보였죠. 기분 좋게 취한
우리는 2차로 근처 이자카야로 가
맥주 몇 잔을 더 마시고
막차 시간을 코앞에 두고
숨을 헐떡이며 역으로 뛰어가
겨우 덴샤를 잡아 타고
각자 자신이 내려야 할 역에서
작별인사를 건네고 차례로 사라졌죠.
결국, 그와 나 둘만이 남게 되었는데
그가 불쑥 저에게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건네며 말했죠, " 맛있는 오므라이스 가게가
있는 데 같이 안 갈래요? "
네. 그렇게 시작된 그와의 데이트는
도쿄를 떠나오기 전날까지 계속되었고,
제가 서울로 돌아온 후에도
전화통화와 이메일로 이어졌답니다.
결국, 그와는 헤어졌지만
그때의 감정과 기분 그리고
뉘엿뉘엿 해가 지던 역의 플랫폼에서
멀리서 굉음을 내며 다가오는 덴샤를
아련하게 바라보며 그가 내리기를 기다리던
그날의 분위기는... 아마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답니다.
제 세 번째 소원은 이렇게 이뤄진 것이지요.
어느새, 한 아이의 아빠가 된 그와
가끔은 페이스북 전화로 통화를 하기도 하는데요
서로의 안부를 묻고 형식적이지만
대만에 놀러가고 싶다는 제말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답하곤 했죠.
" 언제든지 와, 내가 진짜 맛있는
대만식 오므라이스를 먹게 해 줄게.
너는 나한테 특별한 친구였다는 거
설마 까먹은 거 아니지? "
푹푹 찌는 여름날.. 폭신한 계란 이불을 덮은
오므라이스가 먹고 싶어 지네요.
<남은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