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때문이란걸... 알고는 있지만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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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을 마시면 솔직해지는 걸까요?

솔직하려면 술의 힘이 필요한 걸까요? "

얼음이 반쯤 녹아내진 위스키 잔을

가벼운 손목 스냅으로 흔들며

옆자리의 늘씬한 그녀가

뜬금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남자 사람 친구가

전화통화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나는

당황스러운 이 질문에

잠시 밍그적거리다 남은 술잔을

어색하게 비우고 그녀에게 말했다.

" 글쎄요, 둘 다 아닐까요,

사람에 따라 좀 다르기도 하겠지만요 "


그녀는 술만 마시면 자신에게 고백을 하는

한참 어린 직장 후배가 있다고 했다

선배가 너무 좋아서 참을 수 없다며

자신의 마음을 받아달라고 어리광을 부린단다.

그래서 내가 왜 좋으냐고 물으면

어이없게 너무 귀여워서라고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고 했다. 농담 같은 이 고백과

그 이유에 헛웃음이 났지만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후배 녀석의 초점 어린 얼빠진

눈방울이 자꾸 아른거리다가

주책맞게 가슴이 두근 되어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이 되면

그저 평소와 다름없는

적당히 가까운 적당히 거리를 둔

사이로 돌아간다고 했다.

어쩌다 또 같이 술잔을 기울이고

슬그머니 취하면 그 녀석의

절절한 고백은 또 반복된다.

평소에 하는 행동들을 보면

장난 삼아 그런 말을 던지는 캐릭터는

아닌데 말이다. 이 고백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그녀 또한 술을 마시면

묘한 설렘과 별 이유도 없이

흔들리는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했다.


남녀 사이...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한발 먼저 나서는 것이 어려운 모양이다.

이 취중고백의 진의를 알 수 없으니

고민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 또한 까마득한 시절이지만

그런 경험이 있었다. 지나고 나서보면

그저 술이 주는 감정적 혼돈에

가까웠는데 말이다.


"누군가의 고백을 받는 것 행복한 일이죠.

그 순간 조금이라도 설레고 흔들렸다면

그걸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시작할지 말지.. 술 때문이란 걸 알고는 있지만요

어쨌든 저는 당신이 부럽습니다. 무지하게.. "

그녀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 남은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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