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명은 가족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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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고, 수시로 가족들에게

심한 폭력을 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체호프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 아버지는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걸까 "

" 저런 감정에 휩싸이는 이유는 무얼까"

하고 말이죠. 이런 노력 덕분인지

그는 인물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깊은 공감력을 끌어내는 작품들을

많이 탄생시켰으며,

한마디로, 공감하는 능력이

그 누구보다 탁월했다고 정평이 났죠.


개인주의가 트렌드를 넘어

당연한 사실이 되어가는 요즘,

상대를 향한 공감력을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친한 친구사이에도

언제 그랬나는 듯이 괴리감과

낯선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요.

사람들은 자신은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쉽게 단정 짓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저 또한 광고회사에서

수없이 '타깃의 공감'을 외치고

고민을 해왔지만, 저의 현실 속 삶에서는

그렇지 못했답니다. 친한 친구들은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어야 하는 존재들이었고

가족들은 무조건 제 편에

서서 나를 믿고 응원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 반대로 저에게

무엇을 바라거나 희생을 요구하는 순간이면

'왜 나만 그래야 하는 거지"하는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곤 했답니다.


사 남매 중 유독 독립심이 강한 편이었던 저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죠

아직도 엄마가 주는 용돈을 받으며

대학원을 준비하던 언니와

전공수업은 외면한 채 독일 철학에

푹 빠져 휴학을 한 오빠와 달리

저는 가장 먼저 첫 월급을 탔고

부모님에게 선물과 용돈을 드렸죠.

온갖 공을 드려 맏딸인 언니가 결혼을 했고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혼을 하게 되자

부모님은 크게 낙담하셨죠.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캠퍼스 커플로 오랫동안 사귀다가

결혼을 한 오빠 또한

일 년을 갓 넘기고 이혼을 하고 말았죠.

청천벽력 같은 두 번의 이혼 소식에

자존심 강한 엄마는 창피한 마음에

친구들도 만나지 않으셨고,

아버지의 한숨은 참으로

깊고도 침울했답니다.


집안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도

'힘든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고

밤마다 전화로 훌쩍이는 언니와

이렇다 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독일로 가버린 오빠에게

저는 몹시도 화가 나 있었답니다.

자신의 아픔만 들여다 볼뿐

가족들의 아픔은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은 그 두 사람이

너무나 이기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죠

뒤돌아 생각해보면

이혼이라는 아픔과 상처는

당사자인 본인들에게

가장 크고 아팠을 터인데

그 당시 저는 언니 오빠가 사라진 그 자리를

제가 대신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자식을 향한 깊은 실망감으로

부모님이 내쉬는 한숨을

참아 내기가 어려웠죠.

그 덕분에, 언니와 오빠를 향한

이해보다 원망과 분노의 감정을

키워왔는지도 모르지요.


이제부터라도, 저는 제 가족부터

공감해 보려고 합니다.

체호프처럼 작가의 상상력을 발휘해

그들의 삶을 조심조심 들여다볼까 합니다.

최소한, 앞으로 그들을 아프게 하는

병명이... 가족이 되지는 말아야겠지요.

공감... 그것은 체호프의 작품처럼

온 힘을 다해 누군가를 알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라는 걸

가슴으로 곱씹으면서 말이죠.


<남은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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