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혁명

by anego emi

대학시절, 전 호주로 어학연수를 간 적이 있었죠.

그 당시만 해도 호주는 '오페라 하우스,

캥거루의 나라'로 알려진 낯선 곳이었는데

학교의 추천으로 여름방학 동안

무료로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지 뭐예요

호주 대사관에서 연결해준 홈스테이는

영화에서나 보던 큰 이층 저택이었고

후덕하게 생긴 주인 부부는 생전 처음 보는

한국 사람인 저를 환한 미소로 반겨주었죠.

매일 아침, 주인아주머니가 싸주는 도시락을

챙겨 들고 어학원으로 가는 기분은

다시 고등학생이 된 듯이 신났고

클래스의 모두는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저에게 친절과 관심을 베풀어주었답니다.


어느 주말이었는데, 주인아저씨와 두 아들이

양 농장으로 피크닉을 가자고 저를 부추겼죠.

딱히 할 일이 없었던 저는 기다렸다는 듯이

곁 옷을 챙겨 들고 따라나섰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만은 양들을 본 것은

처음이었고, 풍성한 양털이 깎여나가는 쇼도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구경을 했죠.

그날 저녁.. 주인아주머니가

저녁으로 스테이크를 차려주었는데

검지 손가락보다 조금 굵직한 뼈가

구름 모양의 고기에 붙어있었죠.

포크와 나이프를 양손에 쥐고 머뭇거리는

저를 빤히 보시던 아주머니는

호주의 명물인 양고기 스테이크라며

어서 먹어보라고 살갑게 웃으셨죠.


그런데 웬일인지 순간, 몇 시간 전에 봤던

수많은 양 떼들이 떠올랐고, 손톱만 한 크기로

썬 고기를 입 속으로 억지로 밀어 넣자

역한 누린내가 저의 비위를 상하게 했지 뭐예요.

그런 저를 힐끔힐끔 보던 제 또래의

주인집 아들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죠.

" 한국 사람들은 채식을 주로 해서

우리보다 건강하고 잘 늙지도 않는 돼요 "

그날 이후로, 전 참치캔과 생선요리

그리고 야채와 빵만 먹어야 했답니다.


나이가 들면서, 음식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이지기 시작하는데요

맛있는 걸 먹기보다는 잘 먹기 위해서죠

어차피 소화력도 떨어지니

예전처럼 많이 먹을 수도 없고

기껏해야 하루에 한두 끼인데

이왕이면 '몸에 나쁘지 않은 걸

먹고 싶다'는 욕심이 드는 건,

저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그런 저에게, 최근에 음식에 관한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책이 있답니다.

발간이 된지는 꽤 되었는데

육식과 유제품의 유해성에 관한

'음식 혁명'이라는 책이었죠.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이 책의 저자인

존 로빈스는 누구나 아는

세계적인 아이스크림 기업인

'배스킨라빈스'의 상속자라는 사실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회사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자랐던 그와 가족들은

비만과 당뇨병, 고혈압으로 고생을 했고

삼촌은 50대 초반에 심장마비로 사망을 했죠.

그 후, 그는 아이스크림 제벌의 엄청난 부를

거부하고 환경운동가로 살아가면서

유제품과 축산물에 감춰진 비리를

폭로하는 여러 편의 책을 썼답니다.


호기심에서 펼쳐 든 이 책은

제가 먹는 모든 것에 대한 반성과

회의적인 생각을 들게 했는데요

무엇보다 육식에 대한 죄책감이었지요.

평소에 고기를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가끔씩 사 먹던 치킨 앞에서도

나도 모르게 망설이게 되고

심지어, 호주에서 처음 맛보았던

양고기의 트라우마가 떠오르기도 했죠.

한편으로는 먹을 것이 넘치는 시대에

알고 보니 육식과 유제품을 제외하면

주변에 먹을 것들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하면서 말이죠


' 먹고사는 것이 일'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네요.

'내가 먹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니

신중해질 수밖에요.

오늘도 저는 음식 앞에서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한없는 고민에 빠집니다.


<남은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던지는 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