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가 몰입해서 보는,
한 편의 잘 쓴 에세이 같은
드라마가 있습니다.
바로 [인간실격]입니다.
매회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명대사에 눈물을 글썽이지요.
치매를 앓고 있는 여주인공의 아버지는
날마다 박스를 줍습니다.
이 모습을 우연히 사위의 어머니에게
목격되지요. 친구들과의
브런치 모임에 가던 중이었던
그녀는 순간, 당황스럽다가
창피한 마음에 황급히 얼굴을 돌리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뜨지요.
결국, 마음이 편치 않았던
그녀는 3만 원이나 되는 브런치를
테이크 아웃한 후, 박스를 줍던
초라해 보였던 사돈어른을
찾아 나서지요. 샐러드와
빵이 담긴 네모난 박스를 앞에 놓고
나란히 앉아 어색한 포크질을 하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 왜, 박스를 주으세요? 혹시
돈이 부족하세요?" 하고 말이죠.
포크로 양상추 하나를 찍어
입으로 가져가던 사돈 어르신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죠.
" 아닙니다. 돈은 문제없습니다.
다만, 제가 사는 그 집이
딸이 시집가기 전에 살던 집인데
그 집의 월세가 60만원 이거든요.
제가 안 살면 그 돈이
딸에게 갈 건데.. 미안해서요.
그래서 하루에 2만 원씩이라도
벌어보자 마음을 먹었죠.
그런데... 2만 원 벌기가
참... 생각보다 어려워요"
순간, 각자의 자식들을 나눠가진
두 어르신들의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평생을 뒷바라지했을 터였지만
자식이니까. 더 해주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안타깝고 미안했겠지요.
그러고 보니, 저 또한
부모님에게 가장 많이 들은
넋두리가 바로 ' 자식이니까 '였습니다.
제게는 제법 이기적이고
흔히 부모 속을 후벼 파는 것이
전문인듯한 오빠가 있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의견이고
오빠에게도 제가 미처 다 알지 못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언제나, 오빠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또 돌아서면
오빠 걱정부터 앞섭니다.
가끔 그런 엄마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라 엄마에게
매정하게 쏘아 부치곤 했죠.
'그렇게 당하고도 또 오빠 걱정이냐'고요
그때마다 엄마는 들릴 듯 말듯한
잔잔한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처럼
내뱉곤 했답니다 " 자식이니까..."
저는 평생 자식을 키워보지 못한 채
누군가의 자식으로
인생으로 마감할지도 모릅니다.
'자식이니까'라는 그 한마디로
평생 끝없는 희생과 사랑을
퍼주고도 늘 모자라고 미안한 그 마음 -
저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나이가 드니 그 말이
자꾸 가슴을 흔듭니다.
'부모에게 자식이란
죽는 날까지 저렇게 가슴에
담고 사는 존재이구나.'하고 말이죠
다시 드라마 이야기를 잠깐 할까요?
남자 주인공은 재혼한 엄마의 집을
방문하지요. 반지하방의 창문 너머로
아들을 기다리던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묻지요.
" 뭐 맛있는 거 했어? "
요리에 자신이 없는 엄마는
아들의 눈을 피하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합니다. " 밥하고 국하고...
또... 김치하고...또... 소시지하고.. 또.."
엄마를 빤히 보던 아들의 눈가가
뜨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런 대답도 없이 돌아서서
어딘로가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창가 너머로 빤히 봅니다.
엄마의 새 남편이 묻습니다.
" 그냥 가는 거야? "
" 아니, 커피우유 사러가는 거야"
"그걸 어떻게 아니?"
" 자식이니까 "
<남은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