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 안타깝게도 저는
이 감정을 매우 잘 느끼는 사람이었습니다.
강한 정신력과 긍정마인드로 충만한 사람이라고
사는 내내 굳게 믿어왔던 저는, 이런 제 감정을
한 번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었죠.
이유가 무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더니
그것은 바로, 저의 결정장애에 가까운
연약한 마음 덕분이더군요.
저의 장점이라고 믿어왔던 것은
(강한 정신력과 긍정 마인드)
그저 남들 앞에 기죽지 않기 위해
억지로 지어낸 자기 방어적 거짓 감정이었으며
마인드 컨트롤이 가져다준
순간의 착각이란 걸 알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회사생활이 그렇게나 힘이 들었나 봅니다.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저는 일은 힘들지 않았으나
언제나, 사람이 힘들었습니다.
물론, 제가 힘들어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 또한 힘들어했던 부류였지만
(이것도, 순전히 제 생각이었는지도 모르지요)
상식에 어긋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그들의 행동과 말에, 저는 뾰족하게 날을 세우고
차갑게 선을 그으려 애를 썼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런 저를
자책하며 불면의 밤을 보내곤 했지요.
다음날이면... 하루 종일 채한 것처럼
불편한 마음을 떨쳐 내려고 더 열심히 일을 하고
퇴근길에 억지로 약속을 만들어
거나하게 취해보기도 했지만
마음은 편안해지지 않았답니다.
그 사람을 보는 것도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어색함을 넘어 싫어지기 시작하면
저는 여지없이 다른 회사를 알아봤고,
다행히, 좋은 선배들 또한 제 주위에
많이 있었기에 이직은 어렵지 않았답니다.
되돌아 생각하면, 말이 좋아 이직이지
그것은 도망이었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거나 애쓰기보다는 무작정
그 상황에서 도망쳐버리는 것이지요.
그러나, 어느 회사를 가도 이상한 사람들은 있었고
회의와 협업이 많은 저의 업종은(광고회사)
하루도 쉬지 못하고 날마다 차고 넘치게
불편한 사람들과 스트레스를 쌓는 것도 모라자,
그것을 잊기 위해 일에 과몰입하고
결국, 저는 번아웃에 빠지고 말았죠.
그 순간에 저는 또 결심을 했답니다
'이 회사를 회사를 떠나자... 아니, 영영 일을 떠나자'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죠.
'고마해라 마이 했다 아이가...'
그 후로, 저는 다시는 회사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지 않기로 했답니다.
가끔은 후배들이 회사일로 투덜대거니
여행의 마지막 날, 회사 업무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요.
그러다가도 여지없이 '이상한 사람과의
불편한 관계'를 트라우마처럼
떠올리며 거칠게 고개를 흔들곤 했답니다.
그러나, 최근에 읽은 책에 의하면
트라우마라는 것은 원래 사람들에게
없는 것이라고 하네요.
단지, 사람들이 자신이 하기 싫거나
피하고 싶은 어떤 것에 대한
스스로의 명분을 찾기 위해,
억지로 꾸며낸 공포의 감정이라고 합니다.
즉슨, 제가 소위 회사로 돌아가기
싫은 근본적인 이유는
'이상한 사람들과의 불편한 관계'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진짜로 더 이상 일을 하기 싫거나
다른 것을 하고 싶으면서
딱히 그럴 명분이 없으니
소식적 나를 괴롭혔던 그 감정을 꺼내 들고
트라우마라는 명분을 씌워서
또 도망을 친 셈이지요.
최근에 아침 명상을 하면서
저는 문득 깨달았답니다.
저는 마음이 유약하고
자존감도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며
생각보다 긍정적이지 않으며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는 자기애를 소유한
여린 사람이라는 것을요.
그러니 늘 결정과 선택을 한 후에
후회가 밀려오면, 불안과 자책에 빠집니다.
그것을 향한 죄책감이
저를 의심하고 저를 질책하고
저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지요.
이런 저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죄책감으로부터
해방시켜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된 것은 내 탓이 아니며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혹 그렇다고 해도 나를 자책할 일은 아니다'
하고 말이죠. 억지로 아닌척하며
감추려 하거나 외면하려 애쓰는 것보다
순간의 감정을 차분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답니다.
제가 저를 참으로 몰랐네요
'나도 모르는 나' 아니 '모르는 척했던 나'는
참으로 힘들었는데 말이죠.
이제부터라도, '모르는 척했던 나'에게
힘들어도 버텨준 나에게...
죄책감이라는 감정으로부터 해방되어
더 이상 도망치는 일이 없도록
애를 써 볼까 합니다.
<남은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