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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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아침 산책을 하고

단골 김밥집에서 김밥 한 줄을 사고

돌아오는 길이었죠.

귓가에 꽂은 이어폰에서 울리는

장엄한 종소리 - 제 벨소리입니다.

'엄마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라고

이어폰 속의 그녀가 또박또박 말해주네요.

웬일이지? 아침부터...

오전 시간에 업무가 다사다난한

저의 처지를 잘 아는 엄마인지라

또 덜컥 겁부터 납니다.

아버지에게 혹 별일이라도?

(저의 아버지는 20년 넘게

파킨슨 병을 앍고 계십니다)


엄마의 목소리는 떨고 있었습니다.

무언가에 굉장히 놀란 듯했죠.

'무슨 일이 있냐' 하고

묻는 저에게 엄마는 이제야

숨통이 트인다는 듯

크게 숨을 내쉬고 조금 전에 있었던

엄청난 사건을 털어놓기 시작했죠.

사건은 전모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침에 일찍 눈을 뜬 엄마는

아버지가 드실 야채죽을

맛있게 끓여놓고 창밖의 쏟아지는

가을 햇살을 감상하며

달달한 커피 한잔을 음미하던 순간,

집전화가 울렸다고 합니다.

요즘 누가 집전화로 전화를 합니까?

(가끔 제가 집전화로 전화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저녁시간이고, 말수가 줄어가는

아버지와 몇 마디 대화를 하기 위함이지요.)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무심코 수화기를 든 엄마가

" 여보세요" 라는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다급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 어머니.. 대업 씨가 사고를 당했어요..."

(대업은 엄마의 막내아들이자

세 자녀의 아버지인 제 동생의 이름입니다.)

엄마는 까악~ 하고 비명을 지르고

도대체 무신 일이냐고 수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묘령의 여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애처로워서 죽겠다는 목소리로

" 아드님 바꿔드릴게요"

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번 상상을 해보세요

70세가 넘은 노모가 한창 먹고살기 바쁜

막내아들이 사고를 당했다고 하니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겠지요.

그리고... 이어서 들리는 목소리...

" 엄마... 내가 사고가 났어..."

엄마는 처음에 " 엄마 " 하는 목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큰일이 났구나' 하는 생각에 말이죠.

그런데 " 내가 사고가 났어..." 하는 목소리에

번뜩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말투가 서울 말투였다고 합니다.


대학 졸업 후 줄곧 대구에서 산 동생은

대구 사투리를 씁니다.

이 대구 사투리는 뭐랄까 부산은 물론,

타 경상도 지역 사투리와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끝마디를

올리듯 말듯한 미묘한 억양이죠.

엄마는 전화기를 든 채

핸드폰을 꺼내 들고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답니다. 동생은 회사 폰과

개인 폰, 두 개를 쓰고 있는데

엄마는 그 순간 회사 폰으로 전화를 한 것이지요.

다행히 냉큼 전화를 받은 동생은

자신이 무사함을 확인시키고

소위 보이스 피싱을 당하기 직전에

현명한 대처를 한 엄마를 위로했지요.


양쪽의 전화를 끊고도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던 엄마는

저에게 전화를 걸어 이 영화 같은

사건을 털어놓고, 그제야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게 되었답니다.

보이스 피싱... 이걸 번역해보면

'목소리로 낛다'인데

협박도 아니고 위협도 아니고

단지 목소리... 내 주변의 누군가를

닮은 목소리를 미끼로

마음을 낛아서 자연스레 금전까지 낛는...

일종의 심리극인 것이지요.

순간, 저는 궁금해졌답니다.

저희 4남매는 모두 분가해 살고 있는데

유독 엄마의 아킬레스 건인

동생을 어떻게 선택했을까요?


아마도... 그들을 피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다면 자식 된 도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예방책은

자주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들려드리는 일이겠지요.

다 알고 있지만 속고 마는 목소리 -

그 보이스를 조심하도록 말이죠.


<남은생 잘 먹겠습니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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