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의 학원제가 막을 내렸다. 우리는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 학과의 전시관을 지킨다. 그리고 누군가 작품에 대해 관심이 있어하면 그 작품을 그린 학생이 근처에 있는지 재빨리 연락을 취해준다. 그래서 자기가 당번이 아닌 날도 학교 근처를 어슬렁 거리며 점심을 먹고 다른 학과 전시관을 두리번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솔직히 내 그림은 인기가 없다. 언제나 작품이 끝나면 소위 인기투표 같은 걸 한다. 쭉~ 책상 위에 놓인 전체 학생들의 작품을 둘러보고 자신의 마음을 끈 작품에 응원의 쪽지를 남긴다. 난 이 응원의 쪽지란 걸 단짝 클래스메이트들이 의리로 남겨놓은 몇 개를 받아 본 것이 전부다. 뭐... 기대도 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어쩔 수 없는 이 엄청난 나이 차이는 그리고 싶은 관심사라는 넘지 못할 벽을 만들었고 나의 그림 실력은 그것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대단하지도 않았으니까. 그저 조금 생각이 겉늙은 소심한 몇몇의 눈을 끌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번 학원제는 조금 달랐다. 그리는 과정 내내 많은 친구들의 관심과 응원을 받았다. 담당 지도 선생님의 열정 덕분이기도 했지만 과정 내내 순조롭게 척척 앞으로 나아가는 내 모습에 모두 놀라워하며 다음을 궁금해했다. 잠을 설쳐가며 어렵게 완성한 내 첫 작품이 나는 그저 마음에 들었다. 처음으로 몇 달을 오롯이 그림에만 몰입했다는 것.. 그 자체가 나에게 너무나 신기한 경험이었으니까. 학교 유학생 모임에서 만난 대만 친구들의 작품을 천천히 둘러보겠다는 핑계로 나는 매일 학교를 나갔다. 그리고 내심 기대했다. 내 핸드폰이 울려주기를... ' 김상~ 누군가 너 작품에 대해 알고 싶어 해? 지금 어디야? '라는 그 누군가의 목소리를 기대하며...
언제나 그랬듯이 내 작품은 그렇게 인기가 없었다. 물론, 처음으로 10장이 넘는 응원의 쪽지를 받았다. 담임 선생님은 큰 선물이라도 안기는 것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 이름을 신나게 외치고 쪽지들을 건넸다. 응원의 메시지라는 것이 별것 없다. ' 그저 대단해요' ' 멋져요~' ' 그렇게 그리고 싶어요' 등등. 그래도 처음으로 받은 두둑한 응원의 쪽지에 잠시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 옆자리의 늘 인디언과 공룡을 그리는 쇼타 군과 눈이 마두 친다.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고개를 숙이는 그의 눈에는 부러움이 묻어있다. 말이 별로 없고 언제나 이해가 느린 쇼타 군은 단짝 친구가 없다. 나는 그가 그저 큰 누나의 마음으로 안쓰러워 먼저 말도 걸고 자청해서 같이 작업도 한다. 그의 그림엔 아이들은 관심이 없다. 언제나 휑한 그의 자리에 그가 그린 키 작은 인디언 꼬마와 붉은색의 불을 뿜는 정체불명의 공룡이 덩그러니 그를 기다릴 뿐이다. 그는 가끔 내 자리로 와 자신의 그림을 가장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 어떠나고 묻는다. 나는 언제나 ' 좋지 않아? 이 인디언 귀엽다!'라고 대답한다. 나의 이 한마디에 그는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는다. 그는 칭찬에 배고픈 것이다. 이 세상 밖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단 하나의 가능성으로 첫발을 조심스럽게 내디딘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 누군가의 칭찬인 것이다. 마음이 짠해졌다. 나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어떤 정답도, 기준도 없는 소위 그저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전부인 우리에게 내 분신과 같은 작품이 사랑받는다는 것은 앞으로 계속 그림을 그려도 괜찮다는 세상의 싸인인 것이다.
하얀 종이로 동동 싼 내 첫 작품을 왼팔에 걸고 씩씩하게 혼자 걷는다. 다 같이 피자를 먹자는 아이들의 초대를 거절하고 나는 별관에 꽤 먼 오차노 미즈 역으로 향했다. 어느덧 여름의 흔적은 말끔히 사라지고 가을이 깊어간다. 길거리의 은행잎들이 노란빛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한다. 저녁노을이 눈부신 언덕길의 초입에선 근처 대학 음악동아리 회원들의 4중주 연주가 잔잔히 울러 퍼진다. 화방과 서점들은 비싼 화집을 오랜만에 싼값에 펼쳐놓는다. 쪼그리고 앉아 음악을 들으며 화집들을 펼치며, 눈 앞에 펼쳐지는 이 아름다운 그 누군가의 분신들이 한없이 또 부러워진다. 언젠가 나도 이렇게 그려낼 수 있을까? 작은 한숨을 짓다 웃는다. 그리고 내 작품을 꼭 안아 본다.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내 분신이... 오늘만큼은 칭찬에 배고프지 않기를 바라며....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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