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되던 날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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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관련 잡지사에 근무하는 30대 초반의 K 씨

여름 방학을 코 앞에 두고, 동방신기의 윤호를 너무 사랑하는 아이 짱과 벤토를 먹으며 오랜만에 긴 수다를 떨었다. 옆 반의 동글동글한 얼굴에 볼륨 넘치는 몸매를 자랑하는 치히로가 갤러리 작품은 다 만든 거야? 하고 아이 짱에게 묻는다. '갤러리? 어디 작품 전시라도 하는 거야? '하고 촉촉하게 잘 튀겨낸 호토모토의 가라아게를 한 입 크게 베어 물며 나는 아이짱에게 묻는다. "응. 언니. 그룹의 전시를 해볼까 해서... 한 작품 당 3천 엔을 내면 작은 갤러리를 빌려서 일주일간 전시할 수 있데.. 아직 멤버가 부족한데 언니도 해 볼 테야?"

이 런치타임의 짧은 수다 덕분에 나는 이 젊은 청춘들과 함께 최근에 나름 인기 있었던 영화, 노르웨이 숲의 끝자락에 잠시 배경이 되었던 긴자의 낡은 지하 갤러리에서 그룹 전시회를 하게 되었다.


별다른 기대도, 별다른 긴장감도 없이 단순하게, 다시 누리게 된 학생 시절의 한 자락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3일간 신나게 끄적인 작품을 들고 긴자로 향했다. 언제나 특별한 일은 아주 작은 우연으로 시작되는 법인 것 같다. 순서를 정해 돌아가면서 갤러리의 오너, 마마와 함께 갤러리를 지키게 되는데, 내가 담당이었던 날... 미술 관련 잡지사에 근무하는 30대 초반의 K 씨가 아주 오랜만에 놀러를 왔다. 그는 아마추어의 그림을 사서 모우는 것이 취미인 듯했다. 30분을 넘게 내 작품 주위를 민망하게 맴돌던 그는 용기를 낸 듯 나에게 다가와 수줍게 말했다. 나의 그림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고 말문을 열고, 코끝에 걸린 안경을 밀어 올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신이 테마를 주면 그려줄 수 있겠냐고. 그 순간, 갤러리의 마마가 이 그림이 여기서 제일로 눈에 띈다고 바람을 잡은 것은 물론이고, 한국에서 온 유학생인데 무척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는 등... 가만히 웃기만 하는 나보다 더 열심이었다.


결국, 난 그에게 그림을 의뢰받았고 한 달 하고 반이 지나 다시 갤러리에서 그를 만났다. 엄청난 지진덕에 움직일 수 없었기에 약속한 시간보다 보름이나 지났다. 그는 내가 꺼내보인 그림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내 그림을 2만 엔이라는 나름 거금을 주고 사주었다. 지금부터 내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터이니, 무언가를 새로 그리게 되면 보여달라고 했다.' 이렇게 황송할 때가....' 나는 너무 감사해서 주책없이 눈물마저 글썽이며 그가 내민 2만 엔인 든 하얀 봉투를 두 손을 꼭 쥐고 어쩔 줄 몰라했다. 그렇게 난... 그의 덕에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것이다.


시부야에 있는 일본 디자이너 전문학교의 체험 수험을 갔을 때, 제법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였던 선생님이 한 말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그림이 일이 되거나 누군가에게 소유하고 싶은 그 어떤 작품으로 인정받아 팔리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오늘 나는... 나의 어린양을 새하얀 트레싱 페이버에 곱게 몇 겹으로 싸서, 내가 그린 일러스트로 만든 엽서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꼭꼭 눌러 담아 나의 첫 의뢰인인 그에게 보냈다. 그리고 이 어린양 은 다시 그릴 수도 만날 수도 없기에 마지막으로 사진 몇 장을 찍어두었다. 그리고 맘으로 속삭였다.' 잘 가라. 가서 이 그림을 보는 모든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그 어떤 이유로든 행복하게 해 주길 바랄게.'


이렇게 인연이 된 갤러리 마마의 권유로 새로 그려서 가져간 몇 작품들이 담주부터 그 갤러리 어느 한구석에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해바라기처럼 걸리게 되었다. 팔려도 팔리지 않아도 그만이다. 그저 세상 밖으로 그들을 선보이게 되는 것이 기쁠 뿐이다. 물론, 그 어린양들이 보낼 때는 아릿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도.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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