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남자와 연애하는 법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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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학교 시절에 한일 교류 단체에서 주관하는 모임에 간 적이 있다. 한류가 붐을 타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또 그들에게 일본어를 배운다. 약간의 참가비를 내긴 해도 그들이 제공하는 프린터물의 값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아깝지 않다. 그곳에서 만난 일본 OL친구가 있다. 그녀는 일본의 유명한 화장품 회사의 연구원이고 한국 드라마와 음악 그리고 음식을 너무너무 사랑한다. 그리고 지금 한참 연애 중인 한국 남자 친구가 있다. 일본 여인답지 않은 화통한 성격은 물론, 얼마나 붙임성이 좋고 유쾌하던지 첫날부터 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살갑게 굴었다. 그녀와 나는 가끔 주말에 만나 술을 마셨다. 그녀 덕분에 알게 된 보험회사 경리 부장인 큰 언니뻘인 그녀도 한류에 푹 빠진 것은 물론, 한국을 사랑했다. 그녀들은 나를 통해 한국을 더 가깝게 알고 싶어 했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했다. 나 또한 반토막 청춘들 틈 속에서 소외감을 느낄 때 좀 더 성숙한 어른의 대화와 술 한잔이 필요할 때 그녀들을 만나서 신나게 마시고 먹고 떠들었다. 그녀들은 소위 일본에서 생긴 나의 베프들이자 술친구들이다. 그녀들과 오랜만에 시부야에서 모였다.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그녀가 찾아낸 와인이 무한 리필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거하게 취한 우리는 신주쿠에 있는 큰 언니의 단골 펍으로 자리를 옮겼다. 토요일 밤이라 펍은 사람들로 넘쳤고 겨우 비집고 자리를 잡은 우리는 맥주잔을 부딪히며 신나게 수다를 떤다. 그러다 옆자리의 세련된 한국 여인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다. 그녀들이 큰 언니의 어설픈 한국어에 연신 '귀여워'를 연발했고 거기에 마음을 끌린 큰 언니는 자신이 술 한잔 사겠다며 그녀들을 우리 자리로 초대했다. 그렇게 동그란 탁자를 꽉 채운 다섯 여인의 술판은 점점 흥을 더해 갔다. 하라주쿠의 유명한 패션 스쿨에 다니는 그녀들은 스타일부터 남달랐다. 무엇보다 어두운 구석이 없이 밝고 상냥한 점이 좋았다. 그런 그녀 중에 한 명이 갑자기 묻는다. 일본 남자들은 왜 그 모양이냐고. 뜬금없는 이야기에 눈이 동그레진 우리는 맥주 한 모금을 삼키며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스토리는 이랬다. 학교에서 썸을 타는 일본 남자가 있는 그녀. 먼저 말을 건 것도 그이고 그녀에게 전화번호를 묻고 교환하자고 한 것도 그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그녀에게 반응이 없다. 데이트를 한 다음 날에도 학교에서 우연히 마두 치면 대면 대면한 것은 물론이며 보낸 문자에 답이 없다. '역시 그저 간 보기인가? 나만 앞서 간 것인가?' 하는 생각에 '에이~ 차라리 마음을 접자 '라는 결심을 하는 순간 문자에 답이 온단다. ' 어제는 바빴어. 아르바이트가 늦게 끝났어. 잘 내지? ' 이건 뭐 하자는 거지? 도대체 나랑 사귈 마음이 있는 거야?' 그렇게 화가 나다가도 또 만나게 되면 한국 남자와 다른 자상함과 섬세함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 역시 너도 마음이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면 일주일이 지나도 그 흔한 문자나 전화 한 통 없다. 점점 마음은 쪼그라들고 머리가 딱 돌기 직전에 또 문자가 온단다. ' 요즘 과제가 너무 밀려서... 작업실에서 정신없었어. 별일 없이 잘 지내는 거지?' 결국 열이 끝까지 오른 그녀는 이 남자와 끝낼 마음으로 오늘 친구랑 술을 마시러 왔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화장품 회사의 그녀는 웃는다. 그리고 말한다. 세계에서 제일 인기 없는 남자가 일본 남자라고. 소심해서 그런 거라고. 확신이 들 때까지 절대 적극적이지 않을 거라고.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필요한 것이 일본 남자들이라고. 자신도 그런 점이 싫어서 남자답고 화끈한 한국 남자들한테 더 끌린다며 장난스럽게 웃는다. '인기 없는 일본 남자들은 개나 줘 버리'라는 큰언니의 마무리 멘트로 우리들의 즉흥적인 연애상담은 끝났다.


그 후로 인연이 된 그녀들을 나는 몇 번 더 만났다. 같은 유학생으로써 도움이 되었고 그녀의 뒷이야기도 궁금했다. 결국 미련을 끊지 못한 그녀의 가슴앓이는 몇 달 동안 계속되었고 템포가 맞지 않는 일본 남자와의 연애를 포기했다. 한참을 지나 일본 남자 사람 친구가 생기면서 알게 된 그들의 진짜 속내는 이랬다. 관계의 발전은 책임으로 이어지고 책임지지 못할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그러나 정말 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때는 관계의 발전을 너머 결혼까지 하고 싶어 지는 것이라고. 일본 남자와 연애를 하려면 참을성부터 길러야 할 듯하다.


아네고 에미

<매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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