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카페 오픈
그동안 정들었던 광화문 오피스텔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무작정 이사를 왔다. 뜨거운 여름을 위해 워밍업을 끝낸 햇살이 서서히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7월의 어느 날, 살고 싶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심지어는 동네 이름조차 생소한 낯선 곳으로 나는 둥지를 옮겼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창문 한번 속 시원하게 열지 못하는 오피스텔이 숨 쉴 때마다 조금씩 산소가 줄어드는 것처럼 답답해졌고, 햇살이 좋은 날이면 드럼통에서 서로 엉겨 붙어 열심히 돌아가는 저 빨래들에게 이 따사로운 햇살아래 뽀송뽀송하게 마음껏 일광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 졌다. 행여 이번 생에 집이라는 걸 갖게 될까 차곡차곡 부었던 청약저축을 미련 없이 정리하고 그동안 오피스텔에 묻어두었던 보증금을 합쳐서, 제법 큰 방과 거실 겸 부엌이 있고 조그마한 베란다가 딸린 주택가의 빌라로 겨우 옮겨올 수 있었다. 원래 갖고 있던 가구들이 별로 없었지만, 퀸사이즈의 침대와 주문 제작해서 만든 커다란 나무책상과 최근에 카드 포인트를 몽땅 털어 산 자세를 교정해 준다는 의자만 챙겨 왔다. 나는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홀짝이며 훵하니 썰렁한 이 집을 어떻게 나를 위한 새 공간으로 꾸밀 것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문뜩, 도톰한 방석과 앉은뱅이 의자가 놓여있던 도쿄의 북카페가 떠올랐다. 그래, 북카페다. 나는 책들을 책꽂이에 줄 맞춰 꽂는 대신, 널직한 네모난 방석 위에 벽돌을 쌓듯이 차곡차곡 쌓았다. 그리고 창가쪽 모서리에 놓인 목이 기다란 키다리 스탠드 램프 옆에 잡지들과 일러스트북을 쌓아 탄탄한 기둥을 만들고, 그 옆에 유리병 속에 담긴 향초를 놓았다. 언제부터인가 내 목과 어깨를 감쌀 기회를 영영 잃어버리고 서랍 속에 구겨져있는 숄더스카프를 꺼내 커튼 대신 창문위에 달고, 두겹으로 된 두꺼운 털실을 양쪽 창틀에 매달아 빨랫줄처럼 만들어 여행지에 기념으로 가져온 그림엽서나 사진들을 나뭇 집게로 고정했다. 어디서든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곳곳에 몇 권의 책들과 함께 방석을 놓아 두고, 포근하고 아늑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형광등 대신 노란 램프들과 향초들을 빛나게 했다. 이제 이곳은 나만의 북카페이자 작업실이며 휴식의 공간이다. 나는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 '북카페 오픈'이라는 제목을 달아 지인들에게 보냈다. 그러자 책을 사들고 놀러 오겠다는 지인들의 반응이 뜨겁다. 왠지 마음이 흐뭇해진다. 이렇게 해마다 집을 내가 꿈꾸는 공간으로 바꿔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일 것 같다. 내년에는 내 그림들이 곳곳에 걸린 갤러리 카페로 바꿔볼까? 가끔 놀러 오는 지인들에게 은근슬쩍 그림도 강매하면서 말이다.
< 해결책 > 베스트셀러라서 얼떨결에 사버린, 혹은 누가 선물해준 책들을 꺼내 3-4권씩, 스탠드 옆이나 창문이 정면으로 보이는 벽 쪽에 쌓아놓고 그 옆에 방석이나 무릎담요를 놓고 향초도 하나쯤 피우고 나만의 북카페 오픈해보기.
- 아네고 에미
< 매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