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에 관한 아름다운 해법
열대야에 시달리던 나의 아침은 이른 새벽부터 시작되었다. 멍하고 무거운 머리를 재차 흔들어 대며 냉장고 속 찬 생수를 패트 병째로 들이킨다. 정신이 버쩍 드는 순간이다. 후덥 한 기운에 완전히 장악당한 나의 아주 익숙한 이 공간이 갑자기 낯설다. 그래, 얼른 이 방을 탈출하는 거다. 서둘러 샤워를 하고 헐렁한 티셔츠와 청바지를 꺼내 입고 집을 나선다. 아.. 뭘 하지? 서점보다 더 시원한 곳은 어디지? 그래... 영화를 보자. 그러고 보니 십만 년 만의 조조 관람이구나. 맥모닝 세트를 아주 저렴한 가격에 사고 한적한 극장에서 별 기대없는 나의 즉흥적인 영화 관람이 시작되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묘한 설렘과 울림이 지속되었다. 상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 누구의 어떤 위로도 스스로가 스스로를 치유하지 전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 그리고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치명적인 그리움. 결국 외로움에 혼자 몸부림치게 되고 그것을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조금 슬프고 아주 낯선 시선들... 이 영화는 남자 주인공의 우울하고도 묘한 표정과 집착에 가까운 이상한 행동을 통해 상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벗어나려고 애쓰는 모습이 음악과 함께 잘 표현되었다. 주인공 남자는 사랑하는 아내를, 아니 얼마나 사랑하는 줄도 몰랐던 아내를, 여느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출근길에서 갑자기 잃고 괴로워한다. 그러나 비단 그렇게 갑자기 무언가를 송두리 채 빼앗길 수 있는 것은 사랑뿐 만은 아닐 것이다. 내 꿈이던 내 용기이던 내 희망이던 내 일상이던 준비되지 않는 상황과 시간 속에서 갑자기 훅~ 하고 들어와서 순식간에 그것을 빼앗아 간다면 그 허망함과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예전보다 훨씬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혼자서 눈물겹게 보내도 스스로가 그 상처 앞에 올 곳이 서지 않는 한 치유되지 않는다. 일본 유학시절, 같이 학교를 다니던 한참 어린 동생이 있었다. 그녀의 남자 친구는 일본어 어학원 시절에 만난 중국인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연인으로 지냈는데 어느 날, 방학을 앞두고 할머니가 위독하시다면 중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 방학 내내 그를 기다리며 힘들어하던 그녀는 새 학기가 시작되고 다 잊은 듯 웃고 있었지만 그녀는 늘 그녀 옆을 지키던 그 못된 남자 친구를 잊지 못했다. 어디를 가도 그의 흔적이 그녀에게 손짓을 하는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학원제를 끝내고 몇 잔의 맥주를 마시고 함께 돌아가던 길, 갑자기 주저앉아 울기 시작한다. 너무 화가 나는데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래서 또 화가 나는데 자꾸 생각이 나서 아직도 미련이 남은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아서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한다. 한참을 그냥 울도록 그녀를 내벼려 두고 나는 그녀와 함께 그의 집으로 무작정 쳐들어 가기로 했다. 그리고 벨을 누르고 또 벨을 누르고 또 벨을 누른다. 대답 없는 깜깜한 그의 집 창문을 매섭게 째려보다 손에 쥔 조그만 돌을 힘껏 던진다. 와장창... 창문이 깨지는 소리를 뒤로하고 그녀와 나는 죽을 힘을 다해 뛰었다. 한참을 뛰어 역 앞에 도착한 그녀와 나는 하이 파이브를 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그렇게 그녀는 그를 보냈다. 그리고 뒤돌아 보지 않았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의 얼굴이 떠 올랐다. 환하게 웃으며 아이들과 뛰어가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와 그녀가 보였다. 그래... 슬픔이든 절망이든 바닥을 치면 이제 다시 올라오는 길만 남은 거야. 아니 다시 올라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스스로 깨닫는 순간이 오고 마는 것이다. 시나리오도 좋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음악도 좋고... 모든 것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영화. 그렇게 내 상실의 시대를 잔잔한 웃음으로 기억하게 하는 영화, 그저 마음이 평온해지는 어느 여름 날의 영화였다. 잊으려 해도 잊어지지 않는 기억 속에서 무더운 이 여름의 새벽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