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이 여덟 개, 감자 두 알, 두부 한 모 " 이것들의 무게에 내 오른쪽 손목은 무너지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안 받아도 그만일 전화를 얼떨결에 받은 탓에, 양손에 나눠들던 검정 봉지가 모두 오른쪽 팔목에 걸렸다. 국가 정책에 의해서 소상공인을 지원하고 어쩌고 저쩌고, 전화기 속에서 숨도 안 쉬고 쏟아지는 상담원의 설명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즈음, 오른쪽 팔목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던 검정 봉지가 팔뚝으로 미끄러졌다. 그 와중에 택배 오토바이는 쏜살같이 내 옆을 지나가고, 깜짝 놀란 나는 휘청거리며 앞으로 쏟아지듯 넘어지고 만다. 그 순간 넘어지면서도, 핸드폰을 놓치지 않겠다고 왼손을 허우적대다가, 안 그래도 힘이 빠진 오른 손목에 강한 충격을 가하며, 보기에도 민망스러운 거북이 자세로, 땅바닥에 간신히 착지를 했다. 오른쪽 손목에 찌릿하는 강한 통증이 있었으나, 창피한 마음에 얼른 몸을 추스르고 일어서니, 금세 괜찮아진 듯했다. 그러나 나의 손목은... 괜찮지 않았다. 단골 약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나이가 들면 유달리 취약한 곳이 생기기 마련인데, 급작스러운 피로감으로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심하게 스트레스가 쌓이면, 몸은 그곳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해소한다고 했다. 즉슨, 버티기 힘들 만큼 자신이 힘이 드니 신경을 쓰라는 신호이다. 나에게는 그 신호가 손목, 발목으로 온다. 안 그래도 약한 그곳에 나름의 강한 충격이 가해졌으니, 결과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손목은 부어오르고, 얼음찜질을 하고, 파스를 부쳐도, 아무런 효과가 없다. 젓가락을 들 수도 없고, 연필을 잡을 수도, 노트북 좌판도 겨우겨우 두드릴 지경이다. 어렵게 예약한 저녁 요가 수업을 눈을 글썽이며 취소를 하고, 왼쪽 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부축하고 멍하니 창밖을 본다. 오늘은 하루 종일 이렇게 멍을 때리며, 나의 오른쪽 손목에게 휴식을 선물해야겠다. (아네고에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