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금)

by anego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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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박이요, 수박! 꿀수박이요! " 골목 초입에 아침부터 우렁찬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흐른다. 드디어 본격적인 여름을 알리는 수박의 계절이 온 것이다. 마트에서 듬성듬성 보이던 귀한 수박이, 1톤 트럭 한가득 탐스럽게 쌓여있다. 두드려도 보고, 들어서 무게도 가름해 보는 아주머니들 틈에 멀뚱히 서서, 나는 진녹색의 선들이 선명하게 새겨진 초록의 공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마츠코'라는 이름이 혼잣말처럼 새어 나왔다. 도쿄 유학시절, 언제나 나와 단짝으로 그림을 그리던 18살의 소녀, 마츠코 - 그녀의 이름이 떠오른 것은 그녀가 수박을 끔찍하게 좋아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어떤 과제를 내어주어도, 마츠코의 그림에는 늘 수박이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수박을 그리는 것은 기본이고, 잊지 못할 추억으로 바닷가에서 수박을 쪼개 먹는 가족들의 모습을 그렸다. 심지어 나를 닮은 캐릭터에서는, 수박 무늬 옷을 입은 검은 주근깨가 있는 빨간 볼의 꼬마를 탄생시켰으며, 그림책 수업에서는 수박을 너무 좋아해서 수박 속으로 들어 간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그려서 모두를 웃게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하이라이트는, 깐깐하기로 유명한 일러스트 실습시간의 과제였다. 향기에 담긴 추억을 그리는 것이었는데, 절대로 향기의 출처를 알 수 있는 사물이 직접 등장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나 이야기가 담긴 그림이어야 했다. 모두 과제가 모호하고 어렵다고 아우성을 쳤다. 나는 그 순간, 마츠코가 수박을 어떻게 등장시킬까 가 궁금했다. 이번에야말로, 수박이 없는 그녀의 그림을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나의 기대와 달리 아주 멋지게 수박을 또 등장시켰다. 살랑살랑 부는 초저녁의 바람을 맞으며, 목욕을 끝내고 베란다에 선 한 소녀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수박 모양의 아이스바를, 조심조심 혀로 핥고 있었다. 어스름 해가 진 하늘에는 누군가 푸우~하고 수박씨를 내뱉은 것처럼, 노란 불꽃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마츠코는 지금도 수박을 그리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아네고 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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