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래기 두부 비빔밥 ' - 푹푹 찌는 더위에 뭘 해 먹겠다고 불 앞에 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웬일인지 오늘따라 안이 환히 들어다 보이는 반찬가게의 통창으로, 트레이에 담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래기가 눈에 들어왔다. 구수한 된장 향과 들기름 향이 적당히 베여있는 시래기 한 접시를 샀다.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손두부와 데운 즉석밥을 국수 그릇에 덜고, 그 위에 간이 슴슴한 시래기 무침을 듬뿍 올려 고추장과 함께 비볐다. ' 시래기'... 이름부터 별로라(쓰레기와 비슷하다나?) 먹고 싶지 않다던 막내 조카의 얼굴이 떠올라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그러다가 도쿄에서 어학원 시절에 만났던 K가 떠올랐다. 부산 출신의 30대 초반인 K는, 첫눈에 무슨 부탁이든 잘 들어줄 것 같은 넉살 좋은 복학생 느낌이 물씬 났다. 아직 일본어가 서툰 나를 위해, 자청해서 핸드폰을 개통해 주고, 필요한 전자제품들을 함께 골라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가방을 챙기는 나에게, 그는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서, 누군가 들을 새라 속삭이듯 말했다. " 누나, 오늘 우리 집에 가서 저녁 먹어요. 엄청 맛있는 게 부산에서 왔어요. "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서둘러 그의 뒤를 따라가며 나는 물었다. " 그런데, 뭘 보내신 거야? " 그러자 그는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지, 꿀꺽하고 침을 삼킨 후 말했다. " 시래기요." 나는 순간, 푸하 하고 웃음을 터뜨릴 뻔했으나, 그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같아 꾹 참았다. 그날 친한 몇몇과 저녁을 먹기 위해 그의 집으로 갔다. 그의 집에서는 쿰쿰한 메주 냄새가 났다. 그는 할머니가 보내준 청국장을 끓이고, 귀하디 귀한 시래기를 된장에 자작하게 조려서 한 상 차려냈다. 모두 맛있게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좋아하는 시래기처럼 소박하고 순수했던 K는, 그 후에 엄마의 손맛이 그리울 때 찾아가는 맛집의 주인장이 되었다. 시래기 두부 비빔밥을 한술 크게 떠서, 입속에 가득 넣고 우걱우걱 씹어본다. K의 집에서 먹던 그 맛이 났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