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이나 한번 먹어요 "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는 몸에 열 개라도 모자란 후배 K가,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거니 생각했는데, 그는 대뜸 날을 잡자고 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나야 언제든지 괜찮다 고 말했다. 내가 퇴사한 후 줄곧 전화와 카톡으로만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던 그와 나는, 몇 년 만에 얼굴을 맞대고 같이 밥을 먹었다. 내가 부장이었던 시절, 그는 다른 본부에 새로 입사한 경력직 피디였는데, 한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센 외모와 달리 사근사근한 성격과 성실하고 열정 넘쳤던 그는, 팀장을 달고 몇 년 후에 자신이 만든 인터넷 광고회사 대표가 되었다. 사업 수안과 아이디어가 남달랐던 그는, 줄줄이 굵직한 광고 캠페인들을 따내고 승승장구하며 회사를 키웠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면서 그는 말했다. " 선배님, 저 이제 회사 그만둡니다. 다른 일을 해보려고요. " 나는 그를 향해 감탄 어린 눈빛을 보내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열정과 배짱, 부럽다. 그 큰 무대에서 프레젠테이션도 강연도 떨지도 않고 그렇게 술술 잘만하더니... 역시 나랑 달라. 난 쫄보라 얼마나 떨었는지 몰라. " 그러자 그는 의외라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 톤 커진 목소리로 말했다. " 어, 정말로요? 전 선배야 말로 강심장인 줄 알았어요. 긴장하시는 줄 전혀 몰랐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야말로 진짜 왕쫄보입니다. 어찌나 덜덜 떨던지 청심환 없이는 무대에 못섭니다 " 그리곤 해맑게 웃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는 약하고 겁 많고 초라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단지 그렇지 않은 척 누가 연기를 더 잘하나의 차이일 뿐. 처음으로 그가 가깝게 느껴졌다. " 그간, 고생 많았네. 이제, 가족들하고 시간도 좀 많이 보내고 천천히 해. 뭐든 잘 해낼 거야. " 그는 흐릿해진 눈빛으로 나를 빤히 보며 수줍게 웃었다. 지금 서로의 눈빛을 타고 흐르는 이 감정은, 분명 내가 인간이 인간에게 느끼는 최고의 감정이라 믿는 것, 바로 연민일 것이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