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훅하고 더운 기운과 뜨거운 여름 햇살이 너무 좋아요!" 도쿄 유학시절, 나보다 15살이 어렸던 룸메이트, 대학생 J가 말했다. 그야말로, 더위를 먹어서 골골 되는 걸 의미하는 일본어 '나츠 바테'가 된 나와 반대로, 그녀는 푹푹 찌는 도쿄의 여름을 진심으로 즐기는 듯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젊으니 별게 다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 보고니, 나와 우연히 만난 인연 중에 그녀만큼 여름을 사랑하는 청춘이 또 있었다. 한 달간의 뉴욕 여행에서 일정을 갑자기 변경하게 되어, 급하게 잡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 같은 방을 쓰던 편집 디자인을 한다던 K -그녀 또한 4월의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짧은 반바지에 민소매에 가까운 반팔 티를 입고 집안을 활보했다. 내내 억수같이 거센 바람을 동반한 비가 오다가, 갑자기 해가 나면서 때 이른 더위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준비해 온 가슴이 시원하게 패인 짧은 원피스를 꺼내 입고, 나에게 산책을 나가자고 졸랐다. 가지고 온 옷이 죄다 긴팔에 니트, 초겨울 용에 가까웠던 나는, 눈부시게 내리쬐는 햇살을 즐기는 그녀와 반대로, 연신 땀을 훔치며 그런 그녀를 부러운 시선으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여름 - 나 또한 여름을 사랑했던 시절이 있었다.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의 사주로 태어난 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여름 아이다. 내리쬐는 햇살 속을 걸으면 왠지 모르게 힘이 났다. 햇빛 아래 가만히 눈을 감으면, 지쳤던 몸과 마음이 충전되는 기분이 들곤 했다. 일에 쫓겨 밥 먹을 시간도 없었던 신입 시절에도, 나는 틈만 나면 해가 잘 드는 회의실에 숨어 들어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크게 숨을 들이쉬며 햇볕을 쬐곤 했다. 그러던 내가 왜 이리도 여름이 힘들어진 것일까. 그래, 다시 여름을 즐겨보자. 여름 속으로 씩씩하게 활보해 보기로 마음을 굳게 먹고, 운동화 끈을 팽팽하게 조여 본다. (아네고 에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