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몰래 찍은 사람들의 사진' -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근처 대형서점에 들어가 서늘한 찬 기운이 도는 실내를 서성인다. 오전부터 사람들은 북적이고, 모두들 자신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책들과 눈을 맞추고 밀당 중이다. 나는 무심코 사진첩 하나를 집어 들었다. 빽빽한 출근길 지하철의 손잡이에 매달려 지그시 눈을 감은 직장인들, 이어폰을 꽂고 뚫어져라 핸드폰을 보는 여고생, 깊은 팔자 주름을 새기고 팔짱을 낀 채 꾸벅꾸벅 조는 아주머니, 김이 설설 나는 순대를 써는 백발의 할머니 등... 지금까지 수없이 내가 우연히 부딪혀왔던 사람들의 사진들로 그득했다. 나는 한참을 멍하니 사진을 보다가, 이 사진들이 찍히던 순간을 잠깐 떠올려보았다. 작가는 자신의 카메라에 잡힌 대상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빠르게 셔터를 눌렀으리라. 한마디로, 몰래 찍은 사람들의 사진이 작품이 되어 전시가 되고 책이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들의 들키고 싶지 않은 순간일 수도 있고, 본인 스스로도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일 수도 있을 터였다. 자신과 다른 타인의 삶은 작품이라는 명분으로 감상할 수 있지만, 내 삶이 고스란히 담긴 고달픈 현실은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후벼 파게 되지는 않을까. 그것이 바로 내가 이 사진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보고 넘길 수 없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아네고 에미)